"美 국정 커뮤니케이션이 돌아왔다" 바이든 행정부의 달라진 소통
공보전문가 대변인에 전문가도 중용
트럼프 시절 좌충우돌 메시지 사라져
"바이든 직접 회견 서둘러야" 요구도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이 등장했다. 그는 “몇 가지 발표사항을 공지하고 곧바로 질의응답에 들어가겠다. 국방장관 일정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대변인이 말을 마치자마자 참석 기자 20명의 손이 모두 올라갔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회견에서는 중동 내 미군의 병력 이동, 미얀마 사태, 군의 코로나19 대응, 한국과 일본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커비 대변인은 몇몇 기자의 질문을 받다가도 “전화 라인에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자”며 대기자 명단을 훑었다. 회견장에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스피커로 연결돼 전화 질의를 할 수 있는 체계는 코로나19가 가져온 백악관 기자회견장의 주요 변화로 꼽힌다.
국방부는 이 같은 정례 기자회견을 1주일에 3회씩 꼬박꼬박 하고 있다. 나머지 이틀은 대변인이 카메라 없이 기자들과 진행하는 일종의 비공식 간담회 ‘개글(gaggle)’이 이어진다. 대변인과 공보 담당자가 매일매일 취재진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는 체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백악관, 국무부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부처 기자회견 역시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지난달 20일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정부 기자회견도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동맹 중시를 강조하며 “미국이 돌아왔다”는 취임 일성을 내놓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국민 소통에서도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주요 부처의 대변인과 공보팀 참모에 베테랑 공보 전문가를 대거 투입했다. 또 정례 기자회견 활성화, 신속한 언론자료 배포, 정책 발표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취재진 사이에서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불신하고 사실 확인 절차를 무시한 채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소통에만 의존했던 트럼프 행정부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라진 돌발 상황, 달라진 메시지
취재진 관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기자회견이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가장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은 ‘전문가 중용’이다. 대변인 혼자가 아니라 관련 분야의 최고위 관료나 전문가를 대동한 회견이 많아 듣기에도 편하고 신뢰도 또한 높아진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백악관 기자회견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인종차별 대응이 주제일 때는 흑인 여성인 수전 라이스 국내정책위원회 국장 △외교안보 사안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코로나19 대응은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 △기후변화 문제는 존 케리 기후변화특사가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43)과 함께 마이크 앞에 섰다.
‘바이든의 입’으로 불리는 사키 대변인은 취재진 질의응답이 길어지면 동석한 고위 관료나 전문가들의 바쁜 일정을 고려해 질문을 쳐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스스로도 “내가 배드캅(bad cop·악역)이 되겠다”고 언급해 아예 ‘배드캅’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주제별 전문가 기자회견이 늘었다는 의미다.
행정부의 핵심 메시지가 고위 당국자의 임기응변이 아닌 대변인을 통해 미리 준비해 온 원고대로 나온다는 사실도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달라진 점이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39)은 주요 부처 대변인 중 특히 사전 원고와 흡사한 답변을 할 때가 많은 대변인으로 꼽힌다. 그는 한일 관계, 한미일 3국 관계 등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민감한 의제에 대해 아시아 취재진이 질문할 때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관계 강화 의지를 천명해왔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북핵 문제 역시 “현재 전반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지루하다’고 비판하지만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다. 그의 신중한 답변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정책팀과의 조율을 거쳐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공보 베테랑이 만드는 ‘브리핑 드라마’
백악관 기자회견은 국정 커뮤니케이션 정상화의 상징으로 꼽힌다. 그 중심에 사키 대변인이 있다. 20년 차 공보 베테랑으로 2004년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대선캠프에서 공보 부책임자를 맡았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대선캠프에서도 활동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백악관 부대변인, 국무부 대변인 등을 거쳐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백악관 대변인이 됐다.
사키 대변인은 지난달 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직후 당일 오후 7시에 곧바로 첫 회견을 시작했다. 약 30분간의 회견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합격점을 받았다. 정치학자 웬디 실러 미 브라운대 교수는 최근 영국 가디언에 “사키 대변인의 회견은 반드시 시청해야 한다(must see). 가뭄 뒤의 단비처럼 신뢰감을 주는 브리핑에 많은 사람이 TV 앞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호평했다.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 필리 토바르 공보 부국장, 시몬 샌더스 백악관 부통령 수석대변인,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수석부대변인 등 사키 대변인과 호흡을 맞추는 멤버들은 모두 7∼10년 이상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전략을 담당했다. 모두 3040 여성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커비 국방부 대변인 역시 2015∼2017년 국무부 대변인을 지내고 이후 CNN방송에서 군과 외교 분야 평론가로 활동했다.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 역시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으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을 지냈다. 그는 성소수자 최초의 국무부 대변인이다.
공보 전문가가 주요 부처 대변인을 맡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 때와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백악관 대변인 숀 스파이서(50)는 공화당 내에서 선거 전략 등을 맡은 인물로 공보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는 2017년 초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부터 “언론이 대통령 취임식 참여 인파를 거짓으로 축소 보도했다”고 주장하며 취재진과 거세게 충돌했다. 계속된 언론과의 불화 속에 대통령의 신임까지 잃었고 6개월 만에 사퇴했다. 후임자인 스테퍼니 그리셤 전 백악관 대변인(45) 역시 약 10개월의 재임 기간 중 단 한 차례도 공식 기자회견을 진행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막 백악관 대변인인 케일리 매커내니(33)는 아예 정치 활동 및 공보 경험이 거의 없었다. 세 사람 모두 자신에게 비판적인 주류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 바이든의 단독 기자회견은 언제?
잘 짜인 국정 커뮤니케이션 체계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지도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단점도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식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있다.
이에 2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는 “이 시기쯤 트럼프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단독 기자회견을 했는데, 바이든 대통령도 그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이 등장했다. 사키 대변인이 “지금은 잡힌 일정이 없다”고 답했지만 취재진의 추가 질문이 잇따랐다. 대통령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취재진의 요청 강도가 갈수록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보팀 내의 초반 잡음도 있다. 사키 대변인은 이달 초 트럼프 행정부가 창설한 우주군 운영에 관한 질문을 받자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와우∼ 우주군이라!”라고 비아냥대는 듯한 태도를 보여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우주군사령부, 공화당 일부 의원으로부터 사과를 요구받았지만 아직까지 사과하지 않고 있다. 사생활을 취재하려는 기자에게 성차별성 폭언을 퍼부은 타일러 조지프 더클로 백악관 전 부대변인은 13일 사퇴했다. 백악관 공보팀은 사태가 불거진 직후 더클로에 대한 징계를 머뭇거리다 더 큰 비판을 받았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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