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알통
[경향신문]
티베트 사람들은 아기를 낳은 뒤 엄마 품에 바로 안기지 않고 밀짚 바구니에 담아둔단다. 울 때까지 내버려두는 건데, 살고 싶은 맘이 생길 때 운다고…. 또 고산지대라 공기가 많지 않으니 울도록 두는 게 폐를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 떼쓴다고 해서 젖을 물리지 않고, 기진맥진 풀이 죽어야 젖을 물린다. 그러면 호흡이 가쁠 만큼 힘차게 젖을 빠는데, 눈물 콧물도 같이 먹는다. 티베트엔 털이 보송보송한 흰소가 있다. 눈처럼 하얀 털을 바람에 날리며 인가 곁에 머물면서 워워 경을 읊는다. 우이독경이라지만 티베트 흰소는 뭔가 다르다. 곰빠 사원의 고승들이 뿔 나팔을 불고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를 때, 흰소들도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며 하얀 입김을 뿜어댄다. 흰소에 바구니를 매달아 아기를 잠재우기도 한다. 지축이 흔들리고 짐승의 냄새가 사나워도 아이가 두려움 없이 알통 굵게 자라라며 그리한단다.
손이 귀해 애들을 정말 애지중지 곱게 키우는 시절이다. 환한 가로등에 어둠은 드물고 놀랠 귀신조차 어디 없다. 하지만 시골은 좀 다르지. 공동묘지 앞에서 여학생을 태운 택시기사. 뒷거울에 학생이 보이지 않자 놀라 급정거. 여학생이 코피를 흘리고 있더라지. “코딱지 파다가 코피 흘리는 거 처음 보세요?” 강심장들만 이곳에 산다.
태권도 도장 버스가 멈춘 뒤 검정띠 흰띠를 두른 아이들이 왁자지껄 쏟아지던 풍경. “우리 좀 더 놀다 갈까?” 하면서 당산나무 아래 발차기 훈련은 시작되고, 검정소 흰소가 있는 나라에서처럼 검정띠 흰띠가 춤을 춘다. 손등과 볼이 발갛게 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강한’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신다. 고추장, 된장, 간장을 만들다가 결국 억장, 환장(?)에 이른 할머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그런 할머니에게 ‘붉으락 곶감’을 얻어먹는 애교는 알통 뽐내기였지. 백기완 할아버지가 입만 열면 말씀하던 그 알통. 빽도 뭣도 없이 알통뿐인 동무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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