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기다려 겨우 바다에 뿌려"..가족 아니면 치르기 힘든 장례

신지수 입력 2021. 2. 24. 21:55 수정 2021. 2. 2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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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면, 서울역 광장엔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종이와 붉은 장미꽃이 놓여지는데요.

외롭게 세상을 떠난 무연고자를 추모하는 행사입니다.

지난 해엔 장미꽃 295송이가 놓였는데요.

1년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난 무연고 사망자 숫자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매년 몇 명이 쓸쓸히 세상을 떠났는지 제대로 된 통계를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지할 곳 없이 홀로 맞이하는 죽음은 장례조차 쉽지 않습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법적 가족' 이 아니어도 사실혼 배우자나 친구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지침을 바꿨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신지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해 9월 모명상 씨는 40년 지기를 대장암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보고 싶구나. 보고싶구나."]

남편과 자녀와의 연락을 끊고 산 친구였지만 모 씨와는 꾸준히 연락했습니다.

병원 입원은 물론 임종까지 모 씨가 지켜봤습니다.

[모명상 : "사망하실 것 같다고 그래서 제가 달려갔더니 막 숨이 멎었더라고."]

'물에 뿌려달라'는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 했는데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바로 치를 수 없었습니다.

[모명상 : "가족 아니면 안 된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사망) 19일 되는 날 벽제 화장터에 가면 거기서 유골을 받을 수 있다고…."]

지난해 1월 복지부는 '사실혼 관계'나 '친구' 등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장사법 관련 지침을 개정했습니다.

하지만 법적 배우자나 자녀, 부모와 형제 자매에게 시신 인수 여부를 확인해 고인이 '무연고자'가 된 뒤에야 가능합니다.

이 기간만 최대 14일, 고인과의 관계 증명 등 여러 행정 절차를 거치다 보면 한 달 가까이 시신이 냉동고에 보관되기도 합니다.

[서울 00구청 관계자/음성변조 : "가족분들에게 시신 인수 요청을 보내드리거든요. 그러면 2주 동안 저희한테 회신을 하게끔 돼있어요."]

전문가들은 생전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박진옥/공영 장례 단체 '나눔과나눔' 상임이사 : "무연고가 된 이후에 장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지인을) 장례 주관자로 지정 한다든지, 이런 법률적인 권한이 부여될 수 있는 방법으로…."]

자발적 비혼모를 선택한 사유리 씨를 계기로 가족의 범위를 넓히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삶의 마지막 단계인 장례는 여전히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에 머물러 있습니다.

KBS 뉴스 신지수입니다.

촬영기자:이호 최석규/영상편집:박주연

신지수 기자 (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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