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미국의 푸에르토리코 주 승인이 의미하는 바

한겨레 2021. 2. 2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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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2017년 6월11일 카리브해의 미국 자치령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에서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지지하는 이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대다수는 독립국가보다는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후안/로이터 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저ㅣ언어학자

2020년은 코로나19의 해였지만, 미국에서는 대선을 포함해 연방의회와 주의회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적 논의가 활발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푸에르토리코 주 승인 여부다. 1493년부터 스페인 식민지였던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미국의 통치를 받았다. 1952년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주민들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2010년대 중반부터 주 승인 여부가 논의되었지만 관철되지 못했다. 이 지역을 주로 승인하면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유리할 거라는 예측이 앞서고 있어 공화당에서 선뜻 찬성하지 않았다.

주민들 입장은 어떨까. 독립을 바라는 이들부터 미국의 주로 승인되기를 바라는 이들, 그리고 현상 유지를 원하는 이들까지 다양하다. 최근 여론은 2020년 11월 치른 선거 결과가 말해준다. 주 승인 지지 52%, 반대 47%. 독립보다는 주 승인을 원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같은 선거에서 새로 뽑힌 페드로 피에를루이시 행정관 역시 푸에르토리코 주 승인을 지지한다.

그런데 주 승인 여부는 정치적 유불리의 계산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어떤 점이 관건일까. 바로 언어 문제다. 이 지역 공용어는 영어와 스페인어지만 주민 대다수는 스페인어를 모어로 사용하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제2언어로서 영어를 필수로 가르치지만 유창하게 사용하는 이들은 많아야 30% 남짓이다. 새 행정관은 한 인터뷰에서 푸에르토리코가 주로 승인되면 주민들이 영어를 열심히 배울 것이며, 스페인어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주의 탄생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그는 또한 푸에르토리코 주 승인은 다문화 사회를 더욱더 지향하는 미국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거라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언어 문제가 주 승인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는 많다. 1912년 미국은 뉴멕시코를 주로 승인했다. 오랫동안 스페인어와 선주민 언어를 사용해온 이 지역 주민들의 영어 사용 비율이 높아진 뒤였다. 1959년 하와이를 주로 승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미국의 주로 승인되려면 ‘미국화’의 상징인 영어 사용 인구수가 중요하다.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피에를루이시 행정관만 인식한 것은 아니다. 2012년 푸에르토리코 당시 행정관은 주 승인을 위해 10년 동안 이 지역의 모든 공교육 언어를 영어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결국 무산되었다.

변화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둔 공화당 경선에 나선 한 후보가 영어만을 공용어로 쓰는 곳에 한해 주로 승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당시 경선에서 승리한 밋 롬니는 이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영어 단일주의를 고집하는 공화당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는 매우 중요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이는 미국 사회의 영어 집착이 일정 정도 약화되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2021년 3월 미 의회에서는 다시 푸에르토리코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민주당은 세력 확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게 분명하고 바이든 대통령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 지역의 주 승인 여부와 함께 지켜볼 점은 영어 단일주의를 둘러싸고 전개될 논의의 방향이다. 보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은 여전히 영어 단일주의를 강력하게 고집할 것이다. 과연 그들의 영향력은 얼마나 힘을 발휘할 것인가. 이는 21세기 미국 정체성을 무엇으로 삼을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미국 정체성의 핵심이자 상징으로 여겨진 영어 단일주의는 과연 어떻게 될까. 푸에르토리코 주 승인 여부가 영어 단일주의의 현재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질문 하나를 더하고 싶다. 이것이 과연 성조기에 푸에르토리코를 상징하는 별 하나를 추가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그 결과에 따라 언어 갈등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국어, 공용어, 표준어라는 명칭으로 주류의 언어만을 인정하는 수많은 언어 단일주의에 균열을 일으키는 유의미한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언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중앙 중심이 아닌 지역의 언어를 대등하게 인정하는 변화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푸에르토리코 주 승인을 지켜보는 나의 물음표에는 이런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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