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 어선 창고 전체가 에어포켓.. 입구부터 바닷물이 없었다"
"파도 높고 기상 나빠 구조요원도 위험"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겠다는 마음 뿐"
“아! 살려주세요!”
지난 21일 오전 10시 23분쯤 경북 경주시 감포항 앞바다. 전복 사고를 당한 9.77t급 홍게잡이 어선 거룡호 안에서 해경 구조대원을 만난 기관장 A(55)씨는 40시간 동안 뒤집힌 배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의식이 또렷했다.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A씨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나밖에 산 사람이 없나요?”
뒤집힌 배 안에 형성된 ‘에어 포켓’ 덕분에 목숨을 건진 A씨 구조 순간이다. A씨를 맨 처음 발견한 해경 중앙특수구조단 소속 여찬희(35) 경장은 “구조자는 에어 포켓이 완전히 형성된 공간에 머무르고 있었고 전혀 물에 젖지 않았다. 그래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 경장은 사고 선박에 대한 해경의 3차 선내 진입 수색조 멤버였다. 동료 서성진 경장과 함께였다. 그는 “1차 진입 때 투입됐던 구조요원들이 ‘기관실이나 선창 쪽에 에어 포켓이 있다’고 했지만,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여 경장은 조타실을 시작으로 선실, 기관실 순서로 수색했다. 식당 옆 가스통을 빼내다가 식당 옆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에어 포켓을 발견했다.
“진입 공간이 좁아 헬멧을 벗고 에어 포켓에 들어가 보니 생존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창고였는데 입구부터 물이 전혀 들어차지 않았습니다.”
길이 15.3m인 거룡호엔 가로 2.5m, 세로 2m, 깊이 1.5m 크기의 어창이 있었는데, 그곳에 에어 포켓이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여 경장은 “생존자는 선반에 앉아 있던 것이 아니라 배가 뒤집히면서 튀어나온 부분에 누워 있었다”며 “공기는 탁해도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는 됐다”고 했다.
여 경장은 “침착하게 기다리면 다시 돌아와 구조해 드리겠다”고 말하고 배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A씨가 사용할 ‘풀 페이스 마스크’를 갖고 다시 A씨에게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파도가 높아 몇 번이나 선내 진입에 실패했죠. 선체에 부딪히면서 구조대원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여 경장은 A씨에게 마스크 사용법을 안내한 뒤 함께 동료들과 힘을 합해 A씨를 배 밖으로 인도했다.
해경 구조 요원 경력 7년차인 여 경장은 해군 해난구조대 출신이다. 대학 레저스포츠과에서 수영을 전공했고, 스쿠버 및 잠수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을 만큼 수영에 자신이 있지만 “해난 구조는 또 다른 세계”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고가 파도가 높고 기상이 나쁜 시기에 발생하는 만큼 경우가 많아 수영에 자신 있다고 함부로 접근하다가는 구조 요원마저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여 경장도 구조 작업 도중 오른쪽 팔과 우측 무릎을 선체에 부딪혀 부상을 입었다. 슈트가 찢어지면서 바닷물이 들어와 구조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함께 구조 작업에 투입됐던 다른 구조 요원은 양쪽 무릎에 심한 타박상을 입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배를 띄우는 리프트 백을 설치할 때 프로펠러 등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엔 얼굴을 다친 뒤 피부가 괴사한 동료 요원이 있었고,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하는 대원도 있었습니다.”
여 경장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해경 구조대원들은 항상 같은 마음으로 일한다”고 했다. “결과가 다 좋을 수는 없지만 한 명이라도 더 살린다는 마음뿐이죠. 이번 사고 역시 아직 못 찾은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고 선박에는 생존자 A씨 등 모두 6명이 타고 있었다. A씨 외에 베트남 선원 1명이 구조됐지만, 병원 이송 후 숨졌고, 나머지 4명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사고 선박은 23일 구룡포 항으로 예인됐다.
여 경장 등 중앙특수구조단 일행은 남은 수색을 포항해경에 맡기고 23일 부산 본단으로 복귀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다. 여 경장은 “내일 다시 사고 현장에 투입되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임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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