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간 사우디 석유장관 재임 '1973년 1차 석유파동 주도'
[경향신문]
“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듯, 석유시대도 석유가 고갈돼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재생에너지 등 대안에너지의 부상 가능성을 꿰뚫어본 격언으로 유명한 아메드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그는 24년간 사우디 석유장관을 지내면서 1973년 1차 석유파동을 주도하는가 하면 1975년에는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더 자칼’에게 인질로 잡히기도 했다.
사우디 국영방송은 23일(현지시간) 야마니 전 장관이 영국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이슬람 성지인 메카에 묻힐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야마니는 왕실 친·인척이 아님에도 1962년 32세의 나이에 사우디 석유장관에 올랐다. 이후 그가 퇴임한 1986년까지 사우디는 석유를 바탕으로 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했다.
1973년 1차 석유파동은 사우디가 영향력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그해 10월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1차 중동전쟁이 벌어지자 야마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원유 생산량을 10% 줄이고 매달 5%씩 추가 감산을 하자고 제안했다. OPEC 회원국들은 직후 원유 가격을 배럴당 3달러에서 5.12달러로 인상하기로 하고 추가 감산과 서방에 대한 원유 금수에 합의했다.
산유국들이 독자적으로 유가를 결정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불황이라는 석유파동으로 이어졌다.
야마니는 2010년 CNN 인터뷰에서 “아랍의 석유 금수조치 배후에 내가 있었다. 경제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 여론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1975년 오스트리아 빈의 OPEC 본부에서 10명의 회원국 석유장관들과 함께 베네수엘라 출신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더 자칼에게 인질로 잡혔다. 당시 카를로스는 야마니와 이란 대표를 살해할 계획이었으나 사우디 등의 보복을 우려해 풀어줬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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