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당신에게 가장 이익되는 방법 / 배복주

한겨레 2021. 2. 24. 13: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숨&결]

배복주 | 정의당 부대표

정의당에서 당대표에 의해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정의당의 부대표이자 젠더인권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나에게도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성폭력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문화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내’가 속해 있는 정치의 공간에서 이 사안을 성숙하고 단호하게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처음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듣고 가해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피해자가 겪은 성추행 피해에 대해서 가해자는 회피나 변명 없이 인정했고 잘못에 대해 사과를 했으며 책임을 지는 방식을 전달했다. 그래서 사실관계의 다툼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을 다하면 피해자는 자신의 일상을 제대로 회복할 수 있는가. 정치인인 피해자가 경험하게 될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해자의 선택과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의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받게 될 실망과 상처는 어떻게 회복해나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도 내가 피해자에게 강조했던 말은 “당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세요”였다. 피해자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겪은 일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할 것인지를 매 순간 가장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가 자신에게 최대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사법적 절차와 비사법적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사법적 절차의 경우, 형법과 성폭력처벌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의 법 조항은 엄격하게 적용되나 그 한계를 넘어선 판례 태도가 있다는 점과 피해자의 법적 권리와 지원 내용이 있어 보장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비사법적 절차의 경우 정의당 당기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징계 절차를 통한 피해구제 방안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통한 권리구제 방안 등이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처럼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피해자는 정의당 내 징계 절차를 통한 피해구제 방안을 선택했다. 당의 처리를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법적 절차에서 비주체화되는 것보다 비사법적 절차에서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됐다.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의당 공동체가 가진 적법한 절차를 충실하게 이행하기로 했다.

정당의 대표에게 성추행 피해를 겪은 국회의원인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자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피해자가 겪게 될 2차 피해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의심, 피해자 행실에 대한 비난, 사적 정보 유출 등 예상되는 피해는 물론 정치인으로서 짊어질 무거운 무게감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자신의 일상은 정치이며, 정직하게 정치를 해나가기 위해서는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피해자의 결정과 용기를 존중하였다. 또한 이 선택이 정치 영역에서 성희롱이나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으나 말할 수 없는 수많은 피해자에게 연대와 지지의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랐다.

조직이나 직장에서 성희롱을 비롯한 성폭력 사안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은 대체로 조직에서 위로받고 지지받으며 조직에서 포용적인 회복의 과정을 갖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은 신속하고 신중하게 이 사안을 알리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피해자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고 가해자가 온전하게 성찰하는 ‘인권과 평등을 기반한 조직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기대하는 것은 신뢰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내가 속한 조직, 내가 속한 국가에서 ‘나의 존엄’을 존중해주고 ‘나의 피해’를 경청해주고 ‘나의 일상’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다.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에서 오롯이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대한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