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뜨강', 왜 김소현·지수를 후천적 흙수저로 그렸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2. 2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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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어떤 지점이 '달이 뜨는 강'의 서사에 울림을 만드나

[엔터미디어=정덕현] "달아. 복수 같은 건 없다. 니 세상엔 분노도 증오도 없는 것이야. 부디 바보가 되어 조용히 평온하게 살아 남거라." 이제 처형되어야 할 처지에 놓인 순노부 족장 온협(강하늘)은 아들 온달(지수)에게 그런 마지막 말을 남긴다. 그런데 이 말은 보통의 서사와는 사뭇 다르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부모가 "원수를 갚아다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분노도 증오도 없이 "바보가 되어" 조용히 살아가라니.

KBS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우리네 설화로 잘 알려진 '바보 온달'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한다. 진짜 바보가 아니라, 바보처럼 살아야 했던 온달의 이야기. 그가 그렇게 살아야 했고 그에게 그런 삶을 마지막 말로 온협이 전한 이유는 그것이 그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순노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달과 살아남은 순노부 사람들은 산 속에 들어가 숨어 산다. 그들이 사는 곳에 '귀신골'이라 이름이 붙여진 건 외부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은유적인 의미도 담겨있다. 그들은 살아있지만 산 사람이 아니다. 귀신처럼 숨어 사는 존재들이다. 족장의 아들이었지만 온달은 그렇게 바보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온달과 순노부 사람들이 그런 바보 같은 삶을 귀신처럼 살아가야 하게 된 건, 평원왕(김법래)의 딸, 평강(김소현)공주와 연관이 있다. 왕보다 더한 힘을 가진 계루부 고추가 고원표(이해영)가 왕후와 아불란사 월광(조태관) 스님이 사통했고 평강마저 월광의 딸이라는 거짓 소문을 낸 것. 이로써 이성을 잃어버린 평원왕(김법래)이 왕후는 물론이고 그를 비호하던 순노부 사람들을 모두 도륙한 것.

어린 평강은 온달의 도움으로 피신해 살아남지만, 기억을 잃은 채 살수집단 천주방에서 살수로 키워진다. 그렇게 명령대로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아버지인 평원왕까지 죽이려했던 평강은 온달을 다시 만나면서 조금씩 기억을 되찾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한다. 결국 천주방 방주에 의해 의도적으로 기억이 지워지고 살수로 키워졌다는 걸 알게 된 평강은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자신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맞게 된 비극 앞에 절망한다. 그가 평강공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고건(이지훈)이 찾아와 궁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공주도 그렇다고 살수도 아니라고 부인한다.

울보 공주를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했다가 진짜로 시집을 간 평강이 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어낸다는 설화의 이야기는, <달이 뜨는 강>에서 권력자들의 욕망에 의해 꺾어져 버린 청춘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바보처럼, 귀신처럼,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로 재해석된다. 이들은 결국 바보가 아닌 장군이 될 것이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아닌 대업을 이뤄나가는 공주가 될 것이다.

사실 <달이 뜨는 강>이 재해석한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서사는 어딘가 많은 퓨전사극에서 다뤄졌던 익숙한 이야기 틀이다. 본래 고귀했던 인물이 누군가의 계략에 휘말려 저잣거리로 내쳐지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야기. <주몽>이 그랬고 <선덕여왕>이 그랬다. 하지만 이 서사에서 '바보처럼'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로 재해석된 부분은 흥미롭다. 그건 바보 온달이 바보가 아니라 바보처럼 살아야 했던 처지였고, 그걸 극복해내고 장군으로 서는 이야기가 마치 지금의 청춘들의 초상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비극적 사건을 통해 후천적으로 흙수저의 삶을 살게 된 이들이 본래 공주이고 족장의 아들이라는 금수저이며 그래서 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서사는 흙수저 청춘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한계를 갖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포기'하고 바보처럼 사는 삶이 아니라 무언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저들과 맞서며 차츰 대업의 꿈을 키워나가는 삶의 이야기는 지금 어쩌다 'N포세대'라고까지 불리게 된 청춘들에게 의미를 주지 않을까.

<달이 뜨는 강>이 하필 이 시대에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설화를 재해석한 건, 권력자들에 의해 '귀신처럼', '바보처럼' 살아가게 된 약자들이 그들의 연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가진 가치를 찾아가고 저들과 맞서는 이야기가 현재에도 어떤 울림을 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게다. 물론 익숙한 이야기 틀이지만, 그 서사가 평강과 온달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바로 이런 현재와의 접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복수 같은 건 없고 분노도 증오도 없이 바보처럼 평온히 살아남으라 했지만, 그건 어쩌면 진정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드라마는 평강과 온달의 각성을 촉구하며 말하고 있는지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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