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공약이니 '따지지 마' 요구는 反민주

기자 2021. 2. 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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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정당화된다는 주장은 아니시죠?" "대통령이 공약하신 사항의 정책 수행은 제대로 해야 되는 게 맞다"며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에서 던진 반문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공약이란 어떻게든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공약을 모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전 세계에 멀쩡한 정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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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정당화된다는 주장은 아니시죠?” “대통령이 공약하신 사항의 정책 수행은 제대로 해야 되는 게 맞다”며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에서 던진 반문이다.

이 말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와 맥을 같이한다. 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었다. 이 발언과 최 감사원장 말의 맥락은 다르지 않다. 결국, 과정의 공정함이 결과의 정의로움을 도출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는 결과만 나오면 과정은 문제가 안 된다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과 대비되는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정은 결과에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는 핵심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공약이란 어떻게든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공약이 선거에서 국민에게 하는 약속임은 분명하지만, 국민은 약속을 지키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대선에서의 공약 이행률은 총선에서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공약 이행률보다 낮다. 총선의 경우 지역에 기반을 둔 실용적 공약이 주류인 반면, 대선의 경우는 전국 차원의 공약과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공약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약을 모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전 세계에 멀쩡한 정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당선됐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그 공약에 찬성한다고 볼 수도 없다. 선거에서 당선인을 선택한 유권자조차도 어떤 이유에서 그를 선택했는지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그를 선택하지 않은 유권자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문 후보를 찍은 유권자 전체가 탈원전을 지지한다고 가정해도,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 대선 당시 문 후보는 41.08%를 득표했는데, 이는 77.2% 투표율에서 득표한 것이므로 전체 유권자 대비로 환산하면, 31.7%의 유권자가 문 후보를 지지한 셈이 된다. 따라서 지난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가 훨씬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모두 탈원전에 반대한다고 할 순 없지만, 문 대통령의 모든 공약이 ‘국민의 뜻’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공약을 지키는 게 국민의 뜻을 받드는 ‘통치행위’가 될 수는 없다. 설령 통치행위라 할지라도, 민주주의 사회라면 과정의 공정함과 합법 여부에 대해 당연히 검증을 받아야 한다. 공무원들이 눈치를 보느라고 무리하지는 않았는지, 법을 어기지는 않았는지를 당연히 검증해야 한다. 여기에서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돼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이라고 한 문 대통령의 2017년 8월 발언이 떠오른다. 이 말처럼만 모든 것이 굴러갔더라면, 현재의 감사원 감사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공무원이 오직 국민만을 위한 충실한 공복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권은 감사원의 감사 때문에 공무원이 일할 공간이 없어진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공무원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최 감사원장이야말로 문 대통령의 말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여권의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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