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식포럼>'한반도평화' 中역할 의존은 '新중화주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
■ 위기의 대한민국 외교 ‘진단과 처방’ - ② 美·中 전략경쟁 구도속 韓·中관계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HK+ 국가전략사업단장)
- 한국의 對中외교 전략
① 한국의 이익과 중국의 이익은 다르다는 점 인지해야
② 美·中 갈등은 불가피…韓에 유리하게 작용할일 없어
③ 北은 中의 주요 전략자산… 北核, 다자적 해결 모색을
④ 한반도 평화·안정, 국민 공감대 기초한 원칙 정립을
[처방]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한·중 관계가 복잡하다. 이는 남북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파악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시각과 미국을 극복 대상으로 인식하는 중국의 대미 전략, ‘극한 경쟁’을 예고하면서 강력한 대중 압박을 천명한 조 바이든 정부의 입장이 교차하는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을 위한 ‘중국 역할론’을 기대하지만, 국력의 비대칭성 확대는 중국식 일방주의의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합의’도 무색해졌고, 한한령(限韓令) 해제도 민간 문제라며 소극적이다. 6·25전쟁도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지원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고, ‘14억 시장의 무기’로 방탄소년단(BTS) 공격이나 한복 논쟁, 김치 원조 논쟁에도 불을 붙여 여론전과 심리전을 병행하는 구태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우국지사들 국적도 바꾸는 중국이다. 당정(黨政) 기관까지 나서는 신중화주의 양상인데도 한국 조야는 무대응이다.
중국은 오히려 미·북 핵협상 결렬과 남북 불통 국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한을 내세워 한·미·일 삼각 안보 구도의 약한 고리인 한국 공략에 적극적이다. 대(對)한반도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한·미 공조가 강화되기 전에 한국의 대미 경사(傾斜)를 저지하려는 이중전술의 일환이다.
여기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다음 몇 가지는 유의해야 한다.
우선, 한국이 필요한 것과 중국이 필요한 것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지난 2월 8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전화 통화에서 언급된 시 주석 방한 문제를 중국은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사드 합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드 문제의 적절한 처리를 원한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사드 추가 배치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그리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3불(不)’ 문제도 기존 방침을 설명한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무시하고 중국은 한국이 ‘약속’했다는 표현을 쓴다. 데이터 협력 구축도 중국은 한국이 동의했다고 하고, 한국은 중국의 입장을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동일 사안에 대한 지속적인 엇박자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둘째, 미·중 관계의 갈등 양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중요하다. 갈등이 여하히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바이든 정부는 방식에 차이가 있겠으나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중 압박 유산을 기초로 중국과의 ‘극한 경쟁’을 예고한 상태며, 중국도 대미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둘러싼 쿼드(Quad) 및 쿼드+3 구상, 중국의 기술 패권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와 중국 주도의 데이터 협력 구축의 충돌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미·중 갈등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를 기초로 잘못된 시그널을 주면 안 된다.
셋째,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 북한과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유지와 북핵 문제를 별개로 인식한다. 물론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해 한·중 양국 모두 종국적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는 공감대는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존재는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고 일본을 압박하며, 한반도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중국은 북한 제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국의 역할을 과도하게 기대하는 것은 희망 사항에 불과할 수 있다. 결국 남북 합의에 따른 교류나 소통은 가능하지만, 북핵 문제는 주변국들과 장기적이고 다자적 관점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넷째, 메시지 관리와 관련해 피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불분명한 시 주석의 방한에 천착해 중국의 의도가 투영된 ‘운명공동체’나 ‘안정된 한반도’ 같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바이든 정부에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일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한·미 동맹 사안인 한·미 연합훈련도 북한과 협의하겠다거나, 민주·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공감대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메시지는 스스로 전략 공간을 제약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어느 한 국가에 의존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지난 4년간 펼쳐진 남북관계의 진전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구축에 절대적이지 못했듯, 미국의 의지와 한·미 동맹이 벽에 부딪혔듯 중국도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사드 문제에 대한 진전 없이, 중국의 일방적인 역사 왜곡과 문화 찬탈에 대한 분명한 인식 표명 없이 대중 관계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스스로 축소시킬 소지가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해 우리 국익과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국가로서 북한에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중국에도 할 말은 할 수 있게 되며 미국에도 우리 의지를 피력할 수 있다. 분명한 전략적 설득 논리가 없으면 선택에 몰리게 된다.
[진단]
사드 한반도 배치로 촉발된 갈등해결이 韓·中관계 ‘제1 과제’
文정부 親中행보에도 中은 최대 교역국 강점 이용 공세 일관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촉발된 갈등 해결을 과제로 떠안고 한·중 관계의 첫발을 뗐다. 정부 출범 2개월 뒤인 그해 7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문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사드 잔여 발사대까지 모두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이 결정은 이후 중국에 한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에 불참하겠다는 내용의 ‘3불(不)’을 약속하는 빌미가 됐다. 이는 최근까지 한·중 관계는 물론 한·미 관계에서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후 전개된 한·중 관계는 모든 외교 정책에 대북 대화 가능성을 앞세우는 정부 기조와 한·중 무역 의존도 불균형 등과 같은 특징이 한국의 전략적 약점으로 작용하며 다양한 형태의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가장 비판받는 ‘대중 저자세 외교’는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을 고집하며 자초한 결과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15일 중국을 국빈 방문해 베이징(北京)대에서 연설하며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이라고 치켜세웠다. 중국이 한반도 내 사드 배치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한한령(限韓令)을 시행 중일 때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연설에서 “중국몽(中國夢)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며 친중 메시지 전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한·중 관계 복원을 위해 정부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한을 집요하게 추진해오고 있다. 미국 주도의 반중 연대 ‘쿼드(Quad)’에 대해서는 “(쿼드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투명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어야 한다”(정의용 외교부 장관)는 식의 소극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보다 시 주석과 9일 먼저 통화하면서 “공산당 성립 100주년 축하” 인사를 건넨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지난 설 연휴를 앞두고는 정세균 국무총리 등 정부·여당 고위급 인사들이 중국어로 한 설 인사에서 “우정” 등을 언급하며 친중 행보의 정점을 찍었다.
한국이 한·미 동맹 훼손 우려까지 감수하며 중국 배려에 힘쓰고 있지만, 한국을 상대하는 중국의 외교 전략은 우호적이기보다는 공세적인 쪽에 가깝다는 평가다. 자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란 전략적 강점과 중화 민족주의, 대북 협상 지렛대 등을 총동원해 강압 전술을 펴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항미원조(抗美援朝·중국이 6·25전쟁을 지칭하는 용어) 참전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위대한 항미원조는 제국주의의 침략 확장을 억제했다”고 말해 한·미로부터 반발을 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공군 열사릉을 참배하며 항미원조를 고리로 한 북·중 친선관계를 과시했다. 과거 고조선·고구려·발해 등 한국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던 중국의 ‘동북공정’ 시도는 최근 김치, 한복 등 문화 분야로 번져 원조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 항공모함의 서해 침범, 중국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침범이 빈번한데도 한국 정부는 항의 외에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정 장관과 가진 첫 통화에서 “(미국이) 이데올로기로 편을 가르는 데 반대한다”며 대놓고 한국의 쿼드 참여 가능성을 견제, 한·미 균열을 유도하기도 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 한·중관계 이해 위한 3가지 키워드
△중국몽(中國夢) =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만들겠다는 중화 패권주의를 뜻하는 말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2년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됐을 당시 ‘중국몽’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하며 등장했다. 2017년 12월 15일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베이징(北京)대 연설에서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3불(不) = 중국 정부가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항의하며 요구한 조건으로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에 불참한다는 내용이다.
중국은 사드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정부는 ‘3불’을 제시하며 갈등 봉합을 시도했는데, 중국은 이를 약속으로 받아들이며 한·중 관계 주요 사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는 뜻으로 중국의 입장에서 보는 6·25전쟁을 의미한다. 6·25전쟁 당시 중국은 인민지원군을 북한에 보내 참전하고 미군 등에 대항해 싸웠다.
지난해 10월 시 주석은 항미원조 참전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이 전쟁을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지칭하는 등 결사항전의 전통 계승을 강조했다. 중국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미·중 갈등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중국의 반격으로도 해석됐다.
[문화일보·수요전략포럼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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