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 치솟은 美 철강 가격..산업 전반 공급부족 심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 가격이 미국에서 급등하면서 가전제품제조업체, 우주부품제조업체 등 산업 전반에 공급 위기가 확대되고 있다.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입했던 철강 관세는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다.
23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철강 공급이 부족해지며 가격이 급등해 열연 강판 가격이 이달 톤당 1176달러(약 130만원)로 1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열연강판은 전자제품, 자동차, 선박에 들어가는 강판의 기초 소재다. 미국 인구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미국 철강 주문 중 완료되지 않은 건수는 5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고, 철강 재고량은 3년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철강 가격 급등으로 인해 철강을 사용하는 업계 전반에 혼란이 몰아쳤다. 미국 철강 업체인 스틸 다이나믹스는 "자체 내부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도 철강이 부족할 정도"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항공 우주 부품 제조업체 스칸딕 스프링스의 사장 헤일 푸테는 "매우 실망스럽다. 주문은 많지만 물리적으로 공급되는 양이 전혀 없다"고 시장 상황을 전했다. 이 회사는 연간 24만 파운드에 달하는 냉연 강판이 필요한데, 공급업체를 찾을 수 없어 100만 달러 계약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미국 인디아나 주를 기반으로 한 자동차 부품업체 스톤시티 프로덕트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의 25%나 높은 수준으로 주문이 쏟아지지만, 정작 원자재인 철강이 부족해 위기에 놓여 있다. 작년에 8주면 납품되던 철강이 이제 12주, 길면 16주가 넘어서야 납품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결국 이 회사는 더이상 추가 주문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원인은 ‘코로나’와 ‘트럼프가 올린 관세’
이렇듯 미국 철강이 부족해진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작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우려돼 줄였던 생산량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 철강업계가 자동차, 트럭, 가전제품 등 철강이 필요한 산업이 회복되는 속도에 비해 철강 생산 속도를 느리게 올렸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제철소의 가동률은 작년 2분기 56%로 저점을 찍은 후 점차 증가했지만, 여전히 작년 2월 대비 8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철강 출하량도 증가했지만, 여전히 작년 수준보다는 낮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입했던 철강 수입 관세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미국내 생산 철강이 줄어든 상황에 수입길도 막혔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 제품엔 25%, 알루미늄 제품엔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내 철강산업을 보호하려는 이 관세조치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에도 계속됐다.
세계 시장과 괴리된 미국의 철강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중국과 유럽 철강 가격이 작년 저점에 비해 80%이상 오른 상황임에도, 현재 미국 철강 가격 수준은 세계 시장 가격보다 68%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철강 가격에 비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가격 격차가 워낙 커서, 25%의 관세에 수송료를 더해도 미국산보다 수입산이 저렴한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해 철강 수요의 18%를 수입했다. 다만 현재는 세계적으로 철강 공급이 수요에 비해 적고, 컨테이너 부족 등의 운송 문제로 수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철강을 이용해 상품을 제조하는 3만 개 이상의 기업을 대표하는 미국 철강 제조 및 소비자 연합은 이번달 초 바이든 대통령에게 금속 관련 관세를 종료해달라고 요청했다. 연합의 상무이사 폴 나단슨은 "회원들이 이처럼 혼란스러운 철강 시장은 처음 봤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다만 철강 가격 급등은 제철소 등 철강 생산업자에겐 호재다. 미국 철강 업체의 주가는 지난 8월 대비 65% 상승했다. 신용평가사 피치의 분석에 따르면 1월 미국 철강사들의 이익률은 45%였다. 미국 철강업체 뉴코는 올해 1분기 실적이 역대 최고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 업체들은 지난달 바이든에게 철강 관세를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국내 산업이 붕괴하지 않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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