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서도 고객 줄 세워야 생존..공간 힘 주는 나이키·젠틀몬스터

김은영 기자 2021. 2. 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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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잔해·6족 보행 로봇 등 구성한 ‘하우스 도산’ 개장
코로나 시대에도 실재적 경험 필요...유통업계, 오프라인 점포 강화

젠틀몬스터 로봇 랩이 1년여간 개발한 6족 보행 로봇 ‘프로브’./김은영 기자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인근의 한 건물, 반듯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폭격을 맞은 듯 무너진 건물 잔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도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이 곳에 이런 잔해물을 세운 이는 누굴까?

이곳은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가 24일 문을 연 플래그십스토어(대표매장)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이다. 대지면적 646㎡(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에 젠틀몬스터와 화장품 탬버린즈, 디저트 누데이크 등 회사가 운영하는 브랜드들이 구성됐다.

하지만 상품보다 공간 곳곳에 놓인 설치물이 더 눈에 띄었다. 매장의 얼굴인 1·2층은 건물 잔해와 계산대가 자리했고, 3층에 위치한 안경 매장은 6족 보행 로봇이 중앙을 차지했다. 2m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의 로봇이 살금살금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 보면 쇼핑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다. 4층 화장품 진열대 사이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묘사했다는 로봇 팔이 구부러졌다 펴지길 반복했다.

매장 곳곳에 설치된 로봇은 젠틀몬스터의 창업자인 김한국 대표의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이다. 사내 로봇 연구소(랩)이 만들었다. 이 회사 구진영 브랜드 전략 파트장은 "쇼핑을 하는데 로봇이 돌아다니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김 대표의 질문에 1년여의 연구 끝에 6족 보행 로봇을 개발했다"며 "강남의 패션 매장은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고객들에 낯설고 놀라운 경험을 주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1·2층에 설치된 설치물./젠틀몬스터

2011년 출범한 젠틀몬스터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한국인의 얼굴형에 맞춰 디자인한 선글라스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전지현이 착용하면서 인지도가 상승했다.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어 현재 30개국, 400여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펜디, 화웨이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했고, 2017년에는 프랑스 럭셔리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사모투자(PEF) 운용사 엘캐터톤아시아로부터 7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15년 572억원이던 매출은 2019년 2980억원으로 뛰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11억원에서 678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아이웨어 시장이 주춤해지면서 젠틀몬스터의 성장세도 제동이 걸렸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사람들이 야외 활동과 여행을 줄이자, 선글라스 판매가 줄어든 것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선글라스를 비롯한 아이웨어 상품군의 매출은 코로나 사태 후 48%가량 감소했다.

젠틀몬스터는 코로나 불황을 이겨낼 해답을 '공간'에서 찾았다. 이 매장의 정식 명칭도 ‘퓨처 리테일(미래 유통)’이란 뜻을 담은 ‘HAUS 0 10 10 10 1’이다. ‘01’은 양자역학적 개념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HAUS’는 자사의 여러 브랜드가 모여 만들어갈 새로운 유통 공간을 의미한다.

앞서 목욕탕, 만화방, 인형의 집 등을 주제로 독특한 매장을 선보였던 이 회사는 2019년 중국 최고급 백화점 SKP가 베이징의 젊은 층을 겨냥해 만든 백화점 SKP-S의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공간이 미래 유통에서도 중요하다는 걸 확인했다. 새로운 럭셔리 백화점을 만들어 달라는 백화점의 주문에 4층 점포 전체를 양떼 목장, 우주선, 복제인간 등으로 채운 화성기지로 꾸몄는데,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 소셜미디어(SNS)를 도배했다. 매장의 콘셉트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은 모두 사내 공간팀에서 진행하는데, 직원 수만 100명이 넘는다.

독특한 외형의 디저트를 선보이는 누데이크 매장./김은영 기자

구 파트장은 "코로나 이후 온라인 판매 비중이 늘었지만, 아이웨어라는 특성상 온라인만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며 "온라인의 성장을 위해서도 체험형 쇼핑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우스 도산을 시작으로 오는 5월 상하이에 더 큰 규모의 미래형 오프라인 매장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비대면(언택트) 쇼핑 시대가 도래했지만, 유통업체들은 오프라인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나이키는 가로수길에 조던 브랜드만 모든 '조던 서울'을, 요가복 안다르는 삼청동에 요가와 커뮤니티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을 열었다.

캐주얼 브랜드 아더에러가 성수동에 연 우주 콘셉트의 '아더 스페이스'는 개장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핫플레이스(명소)로 꼽힌다. 이 매장에서 옷을 사기 위해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시 공간을 모두 둘러봐야만 의류 코너에 들어갈 수 있다.

백화점 등 대형 쇼핑 점포도 공간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6일 서울 여의도 파크원에 개장하는 ‘더현대서울’의 영업면적 절반을 조경, 폭포, 미술관 등으로 구성했다. 쇼핑을 통해 휴식과 치유를 경험하는 ‘리테일 테라피’를 지향했다는 게 백화점 측의 설명이다.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학 마케팅 전공 교수는 "온라인 유통이 확산하더라도 실재적 경험과 직접 소통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더 커지고 있다"며 "오프라인 매장은 경험과 브랜드 소통의 채널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우주 공간을 주제로 한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아더 스페이스’./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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