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귀족 시대의 종언을 기다리며 [신평의 풀피리㉚‧마지막 회]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2021. 2. 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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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탈법, 무법으로 기득권 수호한 무리, '정치의 계절'에 심판해야

● 진보 귀족의 전도된 의식세계
● 기득권층에 기회 빼앗긴 국민들
● 사라진 사회적 사다리 복원 필요성
● 차기 대통령에 맡겨진 국가대개조 책무

*19대 대선 당시 신평 변호사(65·사법연수원 13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지식인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경북 경주에서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며 산다.

2019년 9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각종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4월 엄청난 수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있다. 내년 3월에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행해진다. 민심의 바람이 과연 어느 쪽으로 불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정치의 계절이 지나간 다음 우리가 좀 더 희망을 안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누가 승자가 되건 지금 정부를 압도적으로 구성하는 세력은 청산된다. 보수정권이 집권하건 진보정권이 이어지건 그렇게 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진보 쪽에 선 두 사람의 상치되는 말을 차례로 소개하려 한다.

진보 귀족의 전도된 의식세계

"조국 장관에 대한 수사는 정치수사였다. 허위 표창장은 강남에서 돈 몇 십만 원 주고 다들 사는 건데 그걸 왜 수사했느냐?" 

이용구 법무차관이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술자리에서 윤 총장에게 했다고 언론에 보도된 말이다. 이 발언을 할 당시 이 차관은 법무부 법무실장이었다. 그와 조국 교수는 진보 편에 서서 사회적 영화를 누리고 사는 소위 '진보 귀족'의 대표 인사다. 진보 귀족은 문재인 정부 핵심요직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주요한 국가정책을 결정해 왔다. 그런데 자식 대학입시를 위해 표창장을 위조하거나 위조한 표창장을 돈 주고 사는 것 정도는 서울 강남지역에서 아주 흔하다는 이 차관 말이 사실일까? 나도 교수를 지냈고 법조인이며 아이들 셋을 대학에 보냈다. 그때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며 희망과 비탄 사이를 오고간 사람으로서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말이다. 이런 일이 횡행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문서위조범을 엄중하게 벌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다반사일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그것은 진보 귀족이나 부패한 기득권층에 한정된 일 아닐까. 현실이 과연 그러한지 여부를 떠나, 법무부 고위공직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아주 역겹다. 

이 차관 말은 일반인 두뇌 속을 마구 흔들어버린다. 설사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한 톨의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지 못하는 그의 전도된 의식세계가 참으로 놀랍다. 어느새 우리는 그를 비롯한 진보 귀족이 만든 희한한 '신세계'에 들어와 있던 것이다. 그들은 편법과 탈법, 무법 행위에 익숙지 못한 우리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자신들은 시시한 규범 따위는 쉽게 초월하는 특권층이라는 인식에 깊이 빠져있다.

기득권층에 기회 빼앗긴 국민들

지난해 12월 23일 법원은 자녀 입시비리, 사모펀드 관련 의혹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날 정 교수측 김칠준 변호사가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진보 편에 섰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이 모두 이 차관처럼 과장된 허위의식 안에서 비틀거리며 지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진보 귀족은 진보의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한 여성이 자신의 고단한 삶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보자. 그는 우리 사회 진보를 위해 오랜 세월 헌신적으로 뜻을 보탠 이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지는 몫은 내내 인색했다. 그의 말이다. 

"진보로 자처하며 학벌사회 타파를 외치는 이들에게서 이중성을 본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서울대 출신에 유학파인 이들은 자기 아이를 외고, 과학고 등 특목고에 보내거나 귀족 대안학교에 보낸다. 기회만 있으면 학벌 타파와 대학무용론, 대학교육에 집착하지 말라는 강연 등을 하고, 책을 쓰고, 교육 평등론을 외친다. 나의 경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학비 면제를 받고도. 아이가 자존심 상할까봐 급식비는 목숨 걸고 열심히 냈다. 재수할 때 아이는 학원은커녕 그 흔한 사설 독서실도 한 번 못가고 주민센터 독서실을 이용했다. 고등학교 때 문제집도 제대로 못 사본 아들은 재수하면서 교회의 아는 분이 학원이라도 보내라며 주신 100만 원 덕에 처음으로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었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업이 안 된다. 스펙도 없고 해외연수도 간 적이 없어서인지, 계속 떨어지며 취준생(취업준비생) 3년 차가 됐다. 아들을 보며 가난과 신분의 대물림은 못난 부모가 남긴 원죄가 아닐까 자괴감이 든다. 

솔직히 고백하면 아들이 삼성을 고집스럽게 가고 싶어 해서 나는 작년에 삼성 규탄 집회에 몸을 사리고 가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 피켓을 들고 규탄 집회를 하는 어미가 아들 앞날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가난과 계층과 직업의 대물림으로 인해 자기 능력을 시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요즘이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을 바꾸려면 벽을 보고 욕하는 대신 피켓이라도 열심히 들어야겠지." 

같은 진보에 속해 있는 사람이지만, 말에 담긴 의식은 이 차관과 가히 천양지차다. 지금 한국 사회의 실체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득권세력과 나머지를 나눠 바라보면 뚜렷한 모습이 들어온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득권세력은 이미 가진 이익을 유지, 확장하려고 무진 노력을 한다. 많은 국민은 기득권에 의한 억압 구조 속에서 평등한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사라진 사회적 사다리 복원 필요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처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지난해 5월, 정의연이 운영한 경기 안성시 소재 쉼터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앞에 한 시민단체가 제작한 비난문이 붙어 있다. [뉴스1]
특히 진보에 속한다고 하는 기득권세력, 이른바 진보 귀족들이 그동안 자기와 자식을 위해 국가제도의 근간을 비뚤어지게 해온 현상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들이 노력한 결과 입시, 간부공무원 채용, 중요전문자격 취득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사다리'가 하나씩 제거됐다. 

조국 교수 부부 재판이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변명에서 여실하게 보았듯, 그들은 거짓말을 너무도 잘한다. 잘못이 드러나도 반성이나 사과가 없다. 부끄러움도 없다. 독립운동가로서 중국군에서 장성까지 역임한 이가 해방 후 내 모교에 와서 어린 후배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라고 했다던데, 그것을 실감한다. 현란한 치장 뒤에 숨은 그들의 위선과 탐욕이 무섭기만 하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것 같으면서도 빠져나갈 틈이 없다(天網恢恢 疏而不失)"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 귀족이 행해온 뻔뻔한 짓이 하늘의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그들이 사회적 사다리를 걷어차 힘없고 '빽' 없는 이의 자식이 겪게 된 고통, 더욱이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조차 방해함으로써 많은 이에게 안겨준 원한의 노적가리가 결코 멀리 치워지지 않을 것이다. 소위 '조국사태'에서 사회적 긴장을 극단적으로 조성시킨 핫 스팟(hot spot)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될지 흥미진진하다. 누가 되건 이번 정권을 장악해 뜻을 펴고 호사를 누려온 진보 귀족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진작부터 가장 유력한 후보로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을 꼽았다. 지금까지 내 예상은 대체로 들어맞아 왔다. 두 사람 모두 진보 귀족이 아니다. 진보 귀족이 행한 파렴치한 일들에 대한 책임이 없다. 그만큼 두 사람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옅다. 이것이 두 사람 지지율 상승 원인의 하나다. 

그들이 강한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박근혜 문재인 정부 기간 국민이 답답하게 겪어온 리더십 위기현상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로 그동안 유약하고 비전 없는 무기력한 리더십에 국민이 많이 지쳤다. 보다 확실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쏠림 현상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력과 통찰력을 갖춘, 솔선수범하는 강인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은 이제 시대정신이라고 하겠다.

차기 대통령에 맡겨진 국가대개조의 책무

한편 기득권층의 진보 귀족이 중심이 돼 저지른 국가와 사회 제반 기능의 왜곡을 대대적으로 고쳐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재조산하(再造山河)'처럼 '국가대개조(國家大改造)'의 책무가 차기 대통령에게 엄숙하게 주어진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금 사법, 교육, 부동산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제도가 헝클어져 있다. 국가대개조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살맛나고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가질 수 있다. 우리 국운이 아직 살아있다면, 이러한 책무를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재명 윤석열의 화려한 등장에 저항하는 기성세력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진보 귀족들이 이재명에 대해 도전장을 던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몇몇 586인사들이 대권 행보에 도전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친문세력이 모씨를 옹립하려고 연판장을 돌린다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진보 귀족이 계속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사회 곳곳에 오물을 퍼질러온 그들은 더 이상 주역이 되지 못할 것이다. 

흘러가는 시대의 물결을 조용히 바라보자. 이재명, 윤석열 두 사람이 그래도 그 물 속에서 흐름에 순응하며 가장 활발히 움직여온 고기들이다. 세상 일이 흔히 그렇듯, 두 사람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는 실수를 해 갑자기 추락할 수 있다. 또 새롭게 큰 고기가 극적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진보 귀족은 얕은꾀를 쓰며 자기 잇속이나 챙기는 잔챙이들이다. 이제 자기 분수를 깨닫고 조용히 퇴장할 준비를 함이 마땅하다. 국민의 자연스런 선택을 중시하고, 늦게나마 역사 흐름에 동참하는 겸손함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런 자세를 가질 때, 그나마 다음 정권에서 그들에게 미쳐올 화를 줄일 것이다. 

지금까지 30회에 걸쳐 '풀피리'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내 사회적 글쓰기가 시작된 건 '조국사태' 초반이었다. 당시 나는 그가 법무장관 후보에서 물러나기를 촉구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그를 비롯한 진보 귀족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풀피리의 마지막이 되는 이 글 역시 수미일관하게, 진보 귀족이 꾸며내는 위선의 시대가 끝나가는 현실을 바라보며 그들의 자중과 조용한 은퇴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요새 기준으로 너무나 긴 글임에도 그동안 불편을 무릅쓰고 애독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내 평생 감사한 일 다섯 가지

없는 집 열 남매 끄트머리로 태어나
못 먹고 못 입었어도
평생 사람을 차별하지 않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고
어릴 적의 무수한 난독(亂讀)으로
이제껏 누구에게 꿀리지 않아 좋았고
몸에 여러 불편한 구석이 있어
내 보잘 것 없음을 자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잦은 시련 속
억울하고 분하다며 허우적대었으나
차츰 남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빠질 수 있어 기뻤다
무엇보다
늦게나마 하느님을 영접하여
그분이 들어오실 내 마음 정리하여 비울 수 있었으니
끝날까지 감사한 일이다

꽁꽁 얼어붙었던 연못의 얼음이 많이 풀렸다. 이제 얇은 얼음이 덮고 있을 뿐이다. 마음이 번잡할 때 연못을 한참 바라보면 평온이 돌아온다. 봄이 되면 철쭉을 중심으로 하여 연못은 화려하게 변신한다. 봄의 색깔로 단장할 연못,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 우리 모두에게 찬란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법학박사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등 역임
● 한국문인협회 회원
● 2018년 대한민국 법률대상 등 수상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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