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제서-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 [시네프리뷰]

2021. 2. 2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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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제목 포제서(Possessor)
제작연도 2019
제작국 캐나다, 영국
상영시간 103분
장르 SF, 스릴러
감독 브랜든 크로넨버그
출연 제니퍼 제이슨 리, 숀 빈, 크리스토퍼 애봇 외
개봉 2021년 2월 24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수입 조이앤시네마

조이앤시네마


시사 기회를 놓쳤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영화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개봉이 늦춰졌으니 혹시 못 봤다면 기회를 주겠노라고. 영화에 대한 정보는 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포제서(possessor)〉. 분명 체크해둔 영화이긴 한데. 공포영화 쪽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긴 하다. 그런데 그건 수동태 ‘악령 들림(possessed)’이고.

영화에 대한 정보는 깨끗하게 잊어버린 상태에서 영화를 플레이(온라인 시사였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더라도 머잖아 떠올릴 이름이 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비디오드롬〉(1983), 〈크래쉬〉(1996), 〈엑시스텐즈〉(1999)와 같은 작품의 편린. 그러고 보니 영화 말미에 기생충에 대한 언급은 감독의 사실상 장편 데뷔작 〈시버스〉(1975)를 호명하는 것이다.

선명히 떠오르는 크로넨버그의 흔적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외국의 리뷰를 보고-한국에서는 올해 개봉하지만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따르면 2019년 제작되었다-뒤늦게 왜 이 영화를 찜해뒀는지 한꺼번에 기억이 돌아왔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아들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아버지의 영화를 보면 B급 호러장르의 외피를 쓴, 영화로 철학하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는데 빼다 박았다. 이건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다. 내러티브와 영상으로 풀어낸.

‘능력자 타샤 보스’의 일은 임플란트다. 임플란트란 호스트, 그러니까 숙주의 몸속으로 들어가 의식을 장악해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다. 대부분의 임무는 문제가 되는 인물을 제거하는 것인데, 호스트는 자살로 자신의 임무를 마감한다. 외형적으로 봐서 호스트의 자살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 영화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악덕 변호사를 칼로 찔러 죽이는 호스티스처럼.

타샤 보스는 능력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만큼의 레벨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편의적으로 이걸, 빙의(憑依)라고 한다면 호스트의 주변인물은 적어도 몸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채서는 안 된다. 철두철미한 프로페셔널인 보스는 빙의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숙주를 망원경으로 관찰하며 그의 몸짓과 말 습관을 연습한다.

능력자가 될수록 그의 감정은 메말라간다. 기쁨과 슬픔, 죄책감 같은 원초적 감정을 감정하는 뇌 부위가 대뇌변연계 편도체인데 아날로그적인 싱크로나이즈 때문인지도 모른다. 핀트는 영화에서 묘사되는 첫 임무부터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그는 애초의 각본대로 총을 사용하지 않고 칼을 사용한다. 역설적이지만 점점 불분명해져 가는 자신의 정체성, 자신을 자신이게 해주는 원초적인 공포와 분노와 같은 감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뿜어져 나오는 피는 역설적으로 호스트 속에 깃든 자신의 영혼이 건재함을 확인하려는 수단이다.

문제는 이후에 주어진, 어쩌면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공적이 될 임무다. 호스트와 싱크로율은 81%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번엔 남자다. 호스트에 빙의한 그는 목욕탕에서 자신에겐 없던 성기를 확인한다. 이 남자는 자신의 장인이 될 글로벌 기업의 CEO를 죽이고, 자신의 여자 친구를 죽인 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살하면서 미션을 마칠 예정이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호스트가 자신의 몸을 재탈환한다. 호스트는 그의 가족을 찾아가 복수한다.

데칼코마니로 이뤄진 영화의 구도

영화의 많은 부분은 데칼코마니다. 화면의 구도에서부터 전후 상황, 복수의 구도와 방법조차 대칭을 이룬다. 한장의 이미지로 영화를 표현한다면. 총천연색 로르샤흐 테스트다. 화려한 듯하지만, 영화는 그가 서서히 감정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담히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확히는 전이다. 그의 잃어버린 슬픔과 연민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심어주는.

어떤 영화는 확실히 ‘신 바이 신’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사의 고전인 〈시민 케인〉(1941)과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가 바로 그런 드문 영화 중 하나다. 이걸 두고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하나. 아마도 이 영화는 아버지의 영화들을 잇는, 어쩌면 뛰어넘는 영화로 영화사에 기록될 것이다. 놓쳤으면 나중에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감독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1980년생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컬트 영화, 그리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컬트영화라는 규정이 있었다. 〈록키 호러 픽쳐 쇼〉(1976) 이후 매니악한 추종자를 거느린 영화쯤으로 사용되는 외국에서 규정과 한국적 맥락은 상당히 달랐다. 쉽게 말해, 멋있고 이미지의 상찬을 담고 있지만 뭔가 난해한 영화들 정도의 느낌이랄까.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이나 〈성스러운 피〉(산타 상그레·1989)와 같은 영화들이 컬트 대접을 받았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이레이저 헤드〉(1977)와 같은 영화가 컬트영화의 원조쯤으로 간주됐던 것에 비춰보면 확실히 한국적 맥락은 따로 있었다. 〈비디오드롬〉(사진)이나

〈플라이〉(1986)와 같은 B급 공포장르 영화 덕분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는 대중적인 영화로 인식되곤 했지만-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비디오숍에서 그의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다-사실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들은 결코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간단히 말해, 이른바 ‘피칠갑 고어의 미학’의 비주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반복적인 탐구를 다른 영화적 설정을 통해 성장해온 감독이다. 이전에

〈열외 인간〉(1977) 리메이크 작품을 리뷰하면서 언급했지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떠나 그의 미학은 재생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생각이 틀렸다. 브랜든이 아버지의 재능과 감각, 사유방식을 물려받은 것은 행운이다. 앞으로 나올 아들의 작품을 기대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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