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업체 직원 수술시켜도 자격정지 3개월.."의사 면허는 신성 불가침이냐"

김지숙 2021. 2. 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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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한다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는데,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총파업까지 예고했습니다.

의사단체들은 교통사고처럼 의도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도 면허 취소를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입장입니다.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의사 윤리를 지킬 수 있고 자율 규제가 가능하다며, 과도한 법 적용으로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무면허 의료' 관련 적발 283명 중 20명만 취소…자격 정지 평균 2.7개월

그렇다면 현행법에 따라 실제로 의사 자격이 취소되는 경우는 얼마나 자주 있을까요? 여러 통계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관심을 가지는 대리 수술·진료와 관련된 지표를 살펴봤습니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게 의료 행위를 하게 해서 행정 처분을 받은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은 283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실제 재판에서 금고형을 확정 받아서 의사 면허가 취소된 건 20명, 전체의 7%였습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2009년, 치과의사 A는 병원 개설 자금이 부족해, 치과의사가 아닌 B에게 돈을 받아 자신 명의로 치과의원을 열었습니다. B는 이 병원에서 '원장'으로서 2009년 12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스케일링 등 의료행위를 해 2,300여 만 원을 받았습니다.
→ 치과의사 A, 2019년 면허 취소

나머지 사례 263건은 재판에서 금고형 미만을 선고 받은 사례들로, 전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례들이 자격 정지를 받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10년, 의사 C는 환자에게 무릎 인공관절 치환 수술을 하면서, 의료기기 판매업체 직원 D에게 뼈 집게를 이용해 절단해 놓은 환자의 무릎 관절 뼈를 떼어내고, 흡입기로 수술 부위의 피를 빨아들이게 하는 등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게 의료 행위를 하게 했습니다.
→ 의사 C, 2018년 자격 정지 3개월

또 간호조무사에게 환자 전신마취를 하게 한 정형외과 간호사, 관절순 봉합 수술에서 의료기 업체 직원에게 환자 어깨 뼈에 구멍을 낸 뒤 앵커를 삽입하게 한 의사도 있었습니다. 실제 수술에 자격이 없는 사람을 참여시킨 위험한 사례였는데, 모두 자격 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들을 포함해 면허 취소를 제외한 자격 정지 기간을 평균 내 봤더니 2.7개월 가량이었습니다.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격 정지 처분 기간은 최장 12개월인데, 통계를 낸 기간 동안 한 건도 없었습니다.

최장기간 자격 정지 처분은 9개월 15일로, 통원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입원 치료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꾸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 급여 4,900여만 원을 타내고, 의사 면허 없이 X-레이 촬영을 한 한의사였습니다.

■ 정치권에서도 거센 비판 목소리…법사위 논의는?

이 같은 통계를 보면 현행법, 그러니까 의료법에 규정된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실제로 금고형을 선고 받아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 사례는 현재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지난 22일 라디오에서 이 같은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번에 복지위를 통과한대로 법이 개정되면, 교통사고를 저질렀을 때에도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무면허 운전으로 2회 적발되고도 또 무면허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운전자를 바꿔치기한 사람이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극히 드문 경우라는 겁니다.


어제(23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김 의원은 "의사 면허는 신성 불가침이냐"며 "오히려 의협이 먼저 나서서 중범죄자는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존경받는 길인데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용서해야 한다고 제식구 감싸기를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정의당 배진교 의원도 어제 의원총회에서 "법안의 내용이 백신 접종까지 거부하며 총파업을 거론할 만큼 비상식적인 것도 아니다"라며 "의사면허를 취소하는 법은 의사들을 위함이 아니라, 악덕 의사에게 진료받을지 모를 국민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러 논쟁과는 별개로, 법안은 이제 국회 법사위가 논의하게 됐습니다. 법사위 관계자는 KBS에 "의료법 개정안은 타 상임위법이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법사위에서 논의가 더 될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상임위에서 논의해서 온 법이기 때문에 그대로 심사, 통과시킨단 겁니다.


■ 현직 의사도 "창피…반대할 순 있지만 백신 얘기는 국민 실망 초래"

아주대학교병원 김대중 교수는 어제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의사들 중엔 상당히 당황하고 있기도 하다"며,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 작년 의사 파업 때문에 복수당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도 사실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의사 단체가 백신 접종 비협조 등을 언급한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의협의 성명서를 보고 "굉장히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법 조항에 대해 반대를 얘기할 순 있지만 백신 접종 비협조 거론으로 국민 대다수가 의사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하게 됐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의사의 면허 취소 사유 등을 찾아본 결과, 이미 변호사나 회계사가 지금 같은 개정안대로 면허를 유지하는 규정을 갖고 있다면 의사도 그 기준에 따르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의협은 살인이나 성폭행 등 강력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만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의협 김대하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지난 22일, TBS 라디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살인이나 성폭력을 저지른 의사를 어떤 의사가 동료로 인정하겠느냐"며, 의료법 개정안 전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접점을 찾아나갈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김지숙 기자 (vox@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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