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문학계 두 여성 거장이 독자에게 남긴 당부

김은비 2021. 2. 2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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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영상 매체가 발달하면서 글·문학의 위상은 이전과는 달라졌다.

미국 문학계 두 여성 거장으로 꼽히는 저자들의 문학에 대한 통찰이 담긴 에세이가 각각 출간됐다.

공통점은 두 저자 모두 문학에서 독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과 여성문제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한 사람은 작가가 쓴 것, 그리고 쓰지 않은 것을 모두 알아볼 수 있다"며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 한다"는 말로 문학에서 독자의 영역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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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 귄·토니 모리슨
생전 쓴 에세이 번역본 각각 출간
르 귄 "'읽기' 작가의 정신과 능동적 협력작업"
모리슨 "읽고 싶은 글 없다면 직접 써야"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상상력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에요. 상상력은 정신의 필수 도구이며 생각의 본질적인 방식, 사람이 되고 사람으로 남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입니다.”(어슐러 르 귄)

“남과 다른 목소리가 지워질까, 쓰이지 않은 소설이 지워질까 두렵습니다. 그릇된 사람들의 귀에 들어갈까봐 속삭이거나 삼켜야 하는 시들, 지하에서 번성하는 금지된 언어, 권력에 도전하는 수필가들의 묻지 못한 물음 등이 지워지는 데 대한 불안을 감출 수 없습니다.”(토니 모리슨)

어슐러 르 귄(왼쪽)과 토니 모리슨(사진=황금가지·바다출판사 제공)
인터넷, 영상 매체가 발달하면서 글·문학의 위상은 이전과는 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힘은 남다르다. 미국 문학계 두 여성 거장으로 꼽히는 저자들의 문학에 대한 통찰이 담긴 에세이가 각각 출간됐다. 최고의 SFㆍ판타지 작가로 꼽히는 어슐러 르 귄(1929~2018년)의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황금가지)와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1931~2019)의 ‘보이지 않는 잉크’(바다출판사)가 그것이다. 책은 저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미국에서 각각 2016년과 2019년에 출간됐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지만 두 저자는 전혀 다른 작품을 썼다. 그런 만큼 책 속에서 두 저자가 털어놓는 문학세계도 완전히 다르다. 르 귄은 ‘어스시 연대기’ 등으로 SF·판타지 소설의 ‘그랜드마스터’란 칭호를 얻은 작가다. 모리슨은 ‘빌러비드’ ‘솔로몬의 노래’ ‘재즈’ 등의 소설로 흑인의 삶과 투쟁을 그린 작가다. 공통점은 두 저자 모두 문학에서 독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과 여성문제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르 귄은 책에서 자신의 책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 마거릿 애트우드 등 다른 작가의 서평을 통해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을 깨고자 한다. “세상에 많은 나쁜 책이 있지만, 나쁜 장르는 없다”고 말한 그는 장르 소설을 문학 소설과 대립시키는 과정에서 편견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비평가들은 종종 장르 소설을 문학 소설과는 구분지으며 합리적 차이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소설은 문학에 속한다”며 “굳이 장르 소설을 나누면서 장르가 열등하다는 편견이 생긴다”고 반발한다. 모든 문학은 단지 작가가 어떤 소재를 적절한 도구와 규칙, 기술로 제대로 요리했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르 귄의 주장이다.

모리슨은 ‘창작 노트’를 공개하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체적으로 털어놓는다. ‘보이지 않는 잉크’ ‘가장 푸른 눈’ 등 모리슨의 소설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죽 훑어보면, 글을 쓰려는 그의 모든 시도가 결국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자기 존중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끊임없이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기억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어붙여 흑인의 공통된 기억을 만들고자 했다.

문학을 대하는 자세에서 두 저자는 공통적으로 독자의 적극적 참여를 강조한다. 르 귄은 “‘읽기’란 작가의 정신과 능동적으로 협력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책은 영상이나 화면처럼 눈을 움직여 주지 않는 만큼 스스로 정신을 쏟아야 한다”며 “글을 따라가고, 행동하고, 느끼고,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모리슨은 한 발 나아가 “독자는 텍스트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쓰기를 돕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한 사람은 작가가 쓴 것, 그리고 쓰지 않은 것을 모두 알아볼 수 있다”며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 한다”는 말로 문학에서 독자의 영역을 넓힌다.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여성 작가로서 겪은 비애와 분노에 대해서 한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르 귄은 책 곳곳에서 ‘남성의 글’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는 상황, 업계가 여성 작가들을 폄하·누락·예외화·실종의 방식으로 주변부로 밀어내는 현상 등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다. 모리슨은 미국 백인 남성 중심 문학계의 맹점이 무엇인지, 그들이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정전을 목록화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등을 꼬집는다.

김은비 (deme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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