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 여야 대치 넘어 국민 공감 끌어낼까

김효실 2021. 2. 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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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료 문제 KBS 이사회 상정]
40년째 월 2500원 제자리 걸음
'여권 인상-야권 인하' 구도 막혀
2000년 이후 세차례 인상안 불발
이번엔 다수 이사들 "검토하겠다"
KBS 이사회 안에 소위 꾸려서
시민참여 공론화 방식 등 고민
시민단체 "의견수렴 노력 긍정적"
방통위·국회 문턱 넘을지 주목
한국방송 전경.

“긴 여정의 시작이다.”지난달 27일 <한국방송>(KBS) 이사회는 현재 월 2500원인 한국방송 수신료를 3840원으로 인상하는 수신료 조정안을 상정했다. 일부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수신료 인상이 확정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 액수는 한국방송의 상정안에 불과하다. 또한 실제 국민이 받아 보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조정액이 반영되려면 ‘이사회-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국회’까지 3단계의 문턱을 모두 넘어야 한다.

<한겨레>는 최근 한국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장·이사 11명을 전화·서면 등으로 접촉해 수신료 조정안 심의 기준·방안 등을 들었다. 응답하지 않은 1명을 제외한 10명의 이사진이 공통으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과정”이었다. “심의 과정이 진행 중이며, 국민 의견 수렴 절차에 신경 쓰겠다”는 의미다. 기사에 참조·인용한 각 이사의 발언은 개인 의견일 뿐 이사회나 한국방송을 대표하지 않으며, 이러한 의견은 이사회 논의 과정에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복적인 여야 대치…벗어날 수 있을까

월 2500원인 현재 수신료는 컬러 티브이(TV) 시대가 열린 1981년 당시 신문 구독료 1개월치를 기준으로 결정됐다. 2000년 방송법에서 수신료 결정 절차를 ‘한국방송 이사회가 심의·의결한 뒤 방송위원회(현 방통위)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어 확정한다’고 정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이 절차를 통과해 수신료가 조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007년, 2010년, 2013년 세차례 수신료 인상이 추진된 바 있으나, 매번 이사회·방통위·국회 표결 절차와 관련한 문제가 대두하며 표류했다.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014년에 낸 논문에서 “한국방송 이사회의 정파성과 방통위의 정파성, 국회의 정파성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수결주의는 극단적인 입법 교착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사회적 논란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특히 여야가 한국방송 이사와 방통위원을 ‘나눠먹기’식으로 추천하고, 각 이사·위원이 자신을 추천한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리’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민주적 합의제의 취지와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겨레>가 접촉한 이사 다수는 “‘여권 추천 이사는 수신료 인상 찬성, 야권 추천 이사는 수신료 인상 반대’라는 정파적 ‘클리셰’를 벗어나 국민 눈높이에서 수신료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정욱 이사는 “나는 야당(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추천이지만, 한국방송 이사로서 한국방송의 재정 상황, 공적 책무 등을 합리적으로 검토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야권 추천 이사들이 수신료 인상안 상정 표결 참여를 거부하며 단체 퇴장했던 모습과 달리, 이번 이사회는 상정 연기를 요청하는 이사 2명에 대한 설득 과정을 거쳐 만장일치로 상정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김태일 이사는 “‘(여권 추천을 의미하는) 다수 이사, (야권 추천을 의미하는) 소수 이사’라는 표현도 문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 의견, 소수 의견’이라는 말이 가능할 뿐”이라고 말했다.

시민 참여 공론조사 도입 적극 검토

한국 사회 방송 민주화의 결정적 계기는 1980년대 ‘시청료(이후 수신료로 명칭 변경) 거부 운동’이었다. 독재정권 아래 ‘무늬만 공사’였던 한국방송이 실질적으로 방송 공정성·공공성을 지향하게 된 배경에 국민의 채찍질이 있었던 셈이다. 이사회가 심의 과정에 국민참여형 ‘숙의 민주주의’ 모델 도입을 적극 검토하는 이유도 “수신료 결정 절차에 국민의 비판과 바람을 가감 없이 반영하기 위해서”다.

이사회는 18일 연 간담회에서 이사 3명으로 이뤄진 내부 소위원회를 꾸렸다. 3명 가운데 소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이 이른바 ‘야권 추천’ 이사다. 소위는 3월 초까지 2주 동안 공론조사를 비롯해 수신료 이슈의 공론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공론조사는 여론조사와 달리 시민대표단 200~300여명이 학습과 토론을 거쳐 의견을 모으는 숙의 민주주의 방식의 한 종류다. 정부가 2017년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 2018년 대입제도 개편과 관련해 도입한 바 있다. 방통위 규칙상 한국방송은 방통위에 수신료 인상안을 제출할 때 ‘수신료에 대한 여론 수렴 결과’를 함께 내게 돼 있지만, 과거 수신료 인상 추진 때는 여론조사·공청회 외에 이런 공론조사를 한 적은 없다.

언론시민단체는 한국방송 이사회의 공론조사 도입 검토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보여주기’식에 그치지 않고 국민 의견을 실질적으로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최근 한국방송을 둘러싸고 인종차별이나 왜색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데, 그때마다 한국방송이 시청자와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공론조사는 시청자 의견 수렴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이 자사의 이해관계를 넘어 한국 사회 공영 미디어 전반에 대한 공론으로 논의를 확장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교육방송>(EBS)의 경우 “수신료를 배분받는 공영 방송사임에도 불구하고 수신료의 산출과 결정 과정에 어떠한 의견도 낼 수 없는 구조”라며 현재 이사회에 상정된 수신료 인상안에 반발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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