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프로배구 김호철 감독님께

송원형 기자 2021. 2. 24.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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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감독님.

감독님은 동갑내기 신치용(66) 진천선수촌장과 함께 한국 남자배구에서 큰 업적을 쌓은 분입니다. 오랜 기간 프로배구 감독을 하면서 수많은 스타와 지도자를 키워냈습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보아 배구는 농구를 제치고 겨울 실내스포츠 대표 종목이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 배구는 전례 없는 위기입니다. 여자배구 흥국생명 이재영·다영(25) 쌍둥이 자매에서 시작된 학교 폭력 논란이 뇌관이 됐습니다.

김호철 감독(왼쪽)과 동갑내기 신치용 진천선수촌장

남자배구에선 태릉선수촌 폭행 사건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2009년 9월 당시 아시아선수권 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55) KB손해보험 감독은 스물네 살 박철우(36·한국전력) 선수를 피멍이 들도록 때렸습니다. 큰 대회를 앞둔 주전 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할 만큼 얻어맞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박철우는 김 감독님을 찾아가 구타 사실을 알렸습니다.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감독님은 박철우의 소속팀(현대캐피탈) 지휘봉도 잡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감독님은 진상을 조사해 잘못을 바로잡고 선수를 보호해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박철우는 ‘전치 3주’ 진단서를 들고 선수촌을 나와 서울 한 식당에서 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폭행 사실을 알려야 했습니다.

사회적 충격이 컸지만, 구타 가해자와 팀 책임자에 대한 처분은 관대했습니다.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던 이상열 감독은 2년 만인 2011년 한국배구연맹 경기운영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감독님도 현대캐피탈 지휘봉은 그대로 잡으셨습니다. 박철우는 소속팀에서 감독님과 한 시즌을 더 보낸 뒤 삼성화재로 옮겼습니다.

이 사건은 이재영·다영 자매 학폭 논란 후 이상열 감독이 “모든 게 인과응보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모범을 보이려고 한다”고 하자, 박철우가 “이 감독에게 제대로 사과받지 못했다.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고 하면서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최근 스포츠 학폭 사건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눈감고 묵인한 어른들의 책임을 얘기합니다. 과거에 지도자와 학부모가 폭력에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 같은 일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2009년 사건도 제대로 처리됐다면 체육계 폭력의 대물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피해자가 납득할 만큼 진정성이 있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쌍둥이 자매는 10여 년 전 중학생 시절 저지른 일로 공개 사과했습니다. 이상열 감독도 일단 “박철우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을 사죄한다”며 올 시즌 남은 경기에 출장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감독님 역시 그 사건에 대해 책임이 없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책임지는 용기를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뼈 깎는 노력이 없으면 배구는 춥고 배고팠던 과거로 되돌아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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