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허브의 향기

박준우 셰프·푸드칼럼니스트 2021. 2. 24.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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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 한 고등학교 제과제빵 강의 이야기.

경력과 나이가 조금씩 차다 보니, 강의나 강연 요청이 늘어간다. 강연이나 이론 수업의 경우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으나, 시연과 실습의 경우는 학교 측과 사전 조율해야 할 부분들이 생긴다. 조리 분야 중에서도 양식과 제과제빵 강의를 주로 하기에 한식과 다른 향신료나 허브를 쓰는 경우가 잦은데, 그런 낯선 재료들은 학생들이 평소 사용하는 재료보다 값이 나가기 때문에 늘 넉넉하지만은 않은 학교 살림으로 모든 재료를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유럽 요리 맛을 표현함에 있어 허브와 향신료 배합은 꽤 중요하기에 학생들에게 선보이는 요리에 현지에서 사용하는 허브와 향신료 느낌을 최대한 알려주려 노력한다.

성북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 날, 재료비 문제로 잠시 고민하다 특강을 담당한 부장교사에게 일단 필요한 허브와 향신료를 빠짐없이 요청했다. 분명 수업 내용이나 재료 분량을 조율하자 연락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수업에 참가하는 아이들 수와 그에 맞춰 필요한 재료의 양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강의 당일, 학교 주방에 들어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청한 스무 가지 가까이 되는 신선한 허브들이 빠짐없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풍성한 양식 주방의 냄새였다. 고등학교 주방에서 그런 향기를 맡게 될 줄이야. 나는 가슴이 벅차 올라 거의 눈물까지 쏟을 뻔하였다. 허브의 향기나 프랑스의 향수 때문이 아니라, 양식 조리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귀한 재료들을 아낌없이 준비해준 학교와 담당 선생님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유독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학생들과 재료를 씹고, 손끝으로 짓이기기도 하며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도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잘 알고 있다. 학생들은 아마도 그 재료를 준비해준 선생님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요리를 공부하고, 유학과 견습 시절을 겪으며, 취직을 하여 요리의 경험을 쌓아갈 때, 어느 순간 그날의 냄새를 기억해내리라 믿는다. 그날 자신들을 소리 없이 응원했던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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