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법을 존중하는 '교육 횡단보도'를 만들라[광화문에서/임우선]

임우선 정책사회부 차장 2021. 2. 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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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단, 사람을 자율형사립고(자사고)로, 횡단보도를 자사고 평가지표로, 경찰을 서울시교육청으로 바꿔야 한다.

18일 서울행정법원은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배재고와 세화고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것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평가를 하면서 갑자기 예고도 없이 기준을 바꿨고 원래 제시한 커트라인보다도 10점을 올렸다. 이는 교육감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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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차장
횡단보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잠시 뒤 초록불이 켜지자 길을 건너기 시작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이 10m 떨어진 곳에 하얀 페인트로 새 횡단보도를 그린다. 그리고 말한다. “이봐, 당신! 횡단보도는 여기야. 왜 무단횡단을 하는 거야?”

황당해진 사람이 말한다. “제가 길을 건너기 시작할 땐 분명 여기가 횡단보도였는데요?” 그러자 경찰은 말한다. “지금 더 나은 교통 환경을 만들겠다는 내 뜻에 반항하는 거야? 역시 문제적 인간이군. 당신은 통행 실격이야!”

이게 웬 콩트인가 싶지만 때로 우리 사회에서 콩트는 현실이 된다. 단, 사람을 자율형사립고(자사고)로, 횡단보도를 자사고 평가지표로, 경찰을 서울시교육청으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하면 수년간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자사고 지정취소 논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8일 서울행정법원은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배재고와 세화고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것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이 두 학교를 포함해 총 10곳의 자사고가 ‘평가점수 미달’이라며 지정을 취소한 바 있다.

법원은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평가를 하면서 갑자기 예고도 없이 기준을 바꿨고 원래 제시한 커트라인보다도 10점을 올렸다. 이는 교육감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또 “자사고는 국가가 고교 교육 다양화가 필요하다면서 만든 것인데 갑자기 이를 바꾸면 국가의 교육시책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사고가 문제라면 제대로 운영되게 이끌라”는 취지의 제언도 했다.

그러나 이날 서울시교육청은 사법부 따윈 아랑곳없는 입장문을 내놨다. “퇴행적 판결”이라는 격한 표현과 함께 “고교 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판결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나의 교육철학은 법보다도 우월하다’는 초법적 세계관마저 느껴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두 달 전 학부모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경원중 혁신학교 전환 논란’을 포함해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무리한 혁신학교 확대 전략도 이해가 간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이럴진대 교육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진 학생, 학부모의 의견이 뭐 대수겠는가. 당시 학부모들은 “우리가 원치 않는데 혁신학교 전환이 웬 말이냐”고 반발했지만 전환은 강행됐고, 급기야 학부모들은 칼바람 속에 거리에서 연판장을 돌리고 경찰이 둘러싼 가운데 밤샘 대치까지 벌였다. 학교 앞에 붙어 있던 ‘니들 자식 과고·외고 내 자식은 혁신학교’라는 플래카드는 진보 교육의 이중성을 꼬집고 있었다.

진보 교육이 아무리 소중한 가치를 지향해도 이를 표방하는 이들이 ‘나는 무조건 옳고 너는 무조건 나쁘다’는 극단적 흑백논리와 자기확신, 우월주의에 빠져 정책을 밀어붙이면 교육개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그 좋다는 모든 정책에서 ‘내 자식은 빼고’라는 이중성까지 드러낸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학교든 그 안엔 똑같이 소중한 학생들이 있다. 교육정책이 사람을 잊은 정치싸움이 되면 안 된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차장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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