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패싱'은 봉합됐지만..

이천종 2021. 2. 2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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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신현수 패싱 사태 일단락
고름은 안 째고 밴드만 덮은 꼴
선거철마다 재정 둘러싼 패싱 논란
곳간지기 경고 허투루 넘겨선 안돼

신축년 새해를 달구던 두 개의 ‘패싱’ 사태가 어정쩡하게 지나가고 있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실상 잔류를 선택하면서 드라마틱하던 ‘신현수 패싱’은 싱겁게 봉합됐다.
이천종 경제부장
4차 재난지원금을 놓고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으로 각을 세우던 여당과 재정당국 갈등이 선별지원 강화로 가닥이 잡히면서 ‘홍남기(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패싱’도 사그라들었다.

둘 다 마무리는 됐지만 영 개운치 않다. 잔뜩 곪았던 고름을 째지도 않은 채 밴드만 덮은 꼴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재정건전성 등 패싱 이면의 본질은 사태 이전과 다르지 않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재정건전성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4차 재난지원금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에 재정여건을 감안해달라는 입장을 전하면서 이번엔 재정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코로나19에서 벗어나면 민주당에서 요구한 전 국민 위로금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해 야당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재정을 둘러싼 패싱 논란은 선거철이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5월10일.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국회로 불러 당정 조율을 시도했다. 열린우리당은 경기회복을 위해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이 부총리를 압박했다. 6월5일 재보궐 선거를 한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이 부총리는 당시 정세균 정책위의장이 추경예산 편성의 필요성을 거론하자 “현재로서는 추경편성 여부를 판단하기 이르다”고 버텼다. 이 부총리는 그해 10월에 치러진 두번째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시장경제 사수론’으로 여권 내 ‘386 세대’와 대립했다. 이 부총리가 당시 386세대를 두고 “우리 경제가 경제정책의 한계에 부딪힌 이유는 386세대가 정치적 암흑기에 저항운동을 하느라 경제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 발언은 지금도 회자된다.

이명박정부 때는 2011년 4·27 재보궐 선거를 앞둔 2010년 말 예산안 처리를 두고 충돌했다.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2011년 예산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중점 예산이 누락된 것과 관련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강하게 질책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안 대표는 윤 장관과 류성걸 차관 등을 향해 “너희만 똑똑하냐”, “우리가 무슨 바보냐”고 적나라하게 질타한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에게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고 질책한 장면과 흡사하다.

문재인정부 초반에는 상고 출신 ‘흙수저’ 신화를 발판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 100일도 안 돼 패싱 논란에 휘말렸다.

우리 몸은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면역체계가 가동한다.

재정당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나라살림을 좀먹는 바이러스를 막는 파수꾼이라는 소명의식을 초임 사무관 시절부터 훈련받는다. 바이러스 침투에 맞서는 면역체계를 설계하는 일이 그들의 역할이라는 직업윤리를 가졌다. 코로나19에도 나라살림만 걱정하는 그들의 고지식함이나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은 선거를 앞둔 여권 입장에서는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건조하고 추운 곳을 좋아한다. 재정 운용에서 포퓰리즘 바이러스는 선거에 기생한다. 포퓰리즘은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만 어느새 우리 면역체계를 무너뜨린다. 당장 이번 추경 재원도 적자국채 발행으로 대부분 충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추경을 위해 적자국채를 20조원 발행하면 국가채무는 976조원, 국가채무비율은 48.3%가 된다. 문제는 추경 편성이 이번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안에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거를 앞둔 선심은 ‘지금’을 파고들어 모두에게 달달하다. 미래세대를 위해 ‘다음’에 꽂힌 곳간지기의 외침은 누구에게도 환영받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이 먼 훗날 돌아보면 ‘석탄 광산 속 카나리아’였을지 모른다.

이천종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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