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신현수의 '직무'

황정미 2021. 2. 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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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사의 파동 진실은 묻혀져
법치 원칙 지키는 게 민정의 숙명

신현수 파동은 여러 가지로 의문이다. 최고 국가지도자의 통치 행위에는 권력기관의 정보와 법적 판단, 인사, 시중 여론이 중요한데 이를 관장하는 곳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그런 핵심 보직의 대통령 참모가 사의를 밝혔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휴가를 다녀온 뒤 거취를 대통령에게 일임했다. 공을 대통령에게 넘긴 모양새다. 지난 일주일간 신 수석의 입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고, 그 부담은 오롯이 대통령이 떠안게 됐다.

이번 파동의 핵심이자 맞춰지지 않은 모자이크 조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유임을 골자로 한 검찰 고위간부 인사안 처리 과정에서 대통령의 역할이다. 인사권자로서 최종 재가했다는 청와대 설명이나 “위법한 일이 없었다”는 박범계 법무장관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통령이 누구로부터 검찰 인사안 보고를 받았는지, 언제 재가했는지, 신 수석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안 시점이 언제인지 알려진 게 없다. 초유의 민정수석 사의 파동이 ‘패싱’ 논란에 그칠 일인지, 대통령 인사 시스템을 훼손한 국기문란 사안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위법한 일이 없었다”는 답변으로 면피할 일이 아니다.
황정미 편집인
불과 한달 전 대통령은 윤석열을 “그냥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정리했다. 그 직전까지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여당 지도부가 “윤석열이 정치를 하고 있다” “탄핵감”이라며 총공세를 펼친 게 무색한 표현이다. 윤석열에 대한 대통령 감정은 조국 사태를 거치며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신년 회견에서 밝힌 담백하기 짝이 없는 그 표현은 신현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추미애가 물러나면서 청와대에 입성한 그가 정권과 윤석열 사이에서 불화와 오해를 덜어내고 ‘문정부 검찰총장’ 선에서 절충한 것이라 짐작했다.

신현수 파동을 낳은 이성윤 유임 인사는 더 이상 ‘문정부 검찰총장’은 없다는 뜻이다. 그 인사를 반대한 신현수마저 ‘우리 편’이 아니라 ‘검찰 편’이라는 낙인이다. 그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자리를 내놓을 만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사의 파동 원인에는 침묵한 채 결과를 승인하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는 윤석열 검찰에 대한 불신이고, 중대범죄수사청 신설과 같은 검찰 무력화 수순이다.

신 수석이 얼마나 오래 청와대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정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의 파동 덕분에 검찰의 정권 수사팀이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남은 수사와 공소, 재판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월성 원전 수사와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수사는 청와대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박범계를 비롯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방벽을 쌓는 터라 물길이 어디로 꺾일지 알 수 없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단적인 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서관이라는 지위에 비춰 신(미숙) 전 비서관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고 했다. 청와대 윗선까지 못 가고 비서관에서 끝난 수사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복귀한 신 수석은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민정수석의 최우선 직무는 국가 기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통치자 뜻이라도 법과 규범, 시스템을 해쳐선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권력 수사는 대통령 공약처럼 ‘성역 없이’ 이뤄져야 하며, 법치에 어긋남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 민정수석의 직무다. 대통령 심기와 정권의 이해득실이 앞서 기강이 무너진 사례를 우리는 역대 정권에서 경험했다. 신현수 파동은 현 정권에 적신호다.

좌우를 떠나 그처럼 좋은 평가를 받는 검찰 출신 인사를 본 적이 없다. 마지막 공직이라는 소명으로 자리를 맡았다고 들었다.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는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지만 퇴임이 평안한 이가 몇 되지 않을 정도로 흑역사를 갖고 있다. 검찰, 국정원과 같은 권력기관을 상대하고 살아있는 청와대 권력을 감시하는 일은 칼날 위를 걷듯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가 또 다른 민정수석 잔혹사로 기록될지는 이제 문 대통령에 달려 있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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