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뇌연구 30년 외길 택한 과학계 '구루'..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이준기 2021. 2. 2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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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뇌연구·유전학' 융합한 새 연구모델 국제적 명성
뇌과학연구소 첫 설립.. 사회성 뇌기전 연구서 잇단 성과
"연구자 정년 한계.. 단절적 연구시스템 하루빨리 바꿔야"

올해 국가 R&D(연구개발) 100조원 시대.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경제 전환 가속화와 4차 산업혁명의 대격변기 속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역할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과거 과학기술은 국가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앞으로 과학기술은 국가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선도하는 혁신의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극복, 2050 탄소중립 실현, 디지털 대전환의 가속화 등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혁신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본보는 디지털 경제 시대에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민의 안전과 건강, 인류의 난제, 미래 대한민국을 위해 지금도 연구실의 불을 밝히며 묵묵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과학기술인을 만나 그들의 삶과 연구 인생, 과학강국 코리아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 등을 조명하는 'D사이언스' 시리즈를 게재한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신희섭 前기초과학연구원 단장

'구루(Guru)'. 특정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뜻하는 단어다. 전문가, 스승, 멘토 등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신희섭 전 단장을 만났을 때 떠오른 단어가 바로 '구루'였다.

신 전 단장은 우리나라 과학계의 '구루'와 같은 존재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찾기 힘들 것이다. 나즈막한 중저음의 목소리에 정갈한 양복, 온화한 미소를 가진 노년의 멋스러운 품격을 소유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1호 국가 과학자이자, 세계적인 뇌 과학자로 우리나라 과학계의 산 증인인 그는 지난해 12월 23일 72세의 나이로 42년의 긴 연구 인생을 정리했다. 지금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91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지의 영역인 '뇌'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뇌 연구에 유전학을 접목해 수많은 연구업적을 통해 세계적인 뇌 과학자로 명성을 얻었고, 퇴직한 지금도 뇌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그의 연구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기억, 감정, 공감 등 뇌의 인지기능에 관심을 갖고 관련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고, 유전학 기법을 뇌 연구에 도입해 융합의 씨앗을 뿌리며 세계적인 뇌 연구그룹으로 주목 받았다. 신 전 단장은 연구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교수라는 안정적인 신분을 벗어 던지고, 연구자를 업으로 평생을 살아 가고자 새로운 도전도 마다하지 않은 실천하는 과학자였다.

2012년에는 주위의 만류에도 IBS 첫 연구단장에 지원해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을 만들어 싹을 틔웠고, 인지, 정서, 사회성에 관여하는 뇌의 종합적 작용을 규명하는 '사회성의 뇌과학'이라는 새로운 뇌 연구 분야를 개척해 다시금 재조명 받았다.그는 지난해 퇴직 이후에도 대전과 서울, 인천 송도를 오가며 후배 과학자의 연구 지도와 바이오 벤처기업의 CSO(최고전략책임자)로 뇌 질환 관련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를 이어가며 남은 연구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신희섭 전 단장은 "국내 뇌 연구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에 대한 열정과 함께 국가를 비롯한 수많은 동료와 선후배 연구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후배 과학자들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대(代)를 이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 시스템이 하루빨리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사' 길 접고, '기초연구자'로 변신=신 전 단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의사'라는 정해진 진로를 포기했다. 그는 1980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코넬대 의대 박사과정에 입학해 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의대 재학시절 여러 환자를 보면서 '의사라는 직업이 즐겁지 않다'고 느꼈고, 적성에도 맞지 않았다"며 "졸업 후 당연히 가야 하는 의사라는 길을 과감히 포기하고 기초의학자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신 전 단장은 의대 출신임에도 의사와 다른 길을 걷다 보니,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숭고하고 존경스러운 지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 없이 아픈 환자 옆에서 치열하게 이들을 챙기고, 똑똑한 사람들이 성실함과 꾸준함을 갖고 의술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지금도 그는 서울대 의대 동기들을 만나면 의사로 한 평생 살아온 그들의 인생에 경외심을 갖곤 한다.

◇한국서 '뇌 과학자'로 새 출발=신 전 단장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MIT대 생물학과 교수에 임용된 이후 6년 만인 1991년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로 한국에 돌아왔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뇌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뇌 연구 기반은 거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이렇다 보니 모든 걸 그 혼자서 해야 했다. 학문적 스승 한 명 없이 홀로 뇌 연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갖고, 지금껏 뇌 과학자로 살아온 것이다.

당시 혁신적인 연구기법으로, 뇌 연구에 융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어떻게 하면 남들과 차별화된 뇌 연구를 국내에서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미국에서 공부한 유전학을 뇌 연구에 도입했다. 유전학을 '뇌 연구의 툴(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신 전 단장은 "뇌 기능을 연구하는 툴로 유전학을 도입하면서 연구적으로 가치가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이는 나아가 기존 생리학적 방식의 뇌 연구를 유전학적 방식으로 새롭게 적용할 수 있는 연구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뇌 융합 연구로 세계적 명성 얻어=신 전 단장은 뇌 연구에 유전학을 융합한 새로운 연구기법으로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1997년 뇌에서 간질과 운동 마비를 일으키는 'PLC-β1', 'PLC-β4' 유전자를 발견해 세계 뇌 연구 그룹에서 주목 받았다. 특히 신경세포 내 칼슘이온농도를 조절하는 유전자 연구는 그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신 전 단장 역시 '유전학을 이용한 칼슘이온 통로의 기능연구'를 가장 큰 연구 업적으로 꼽았다. '유전자 녹아웃' 기법으로 생쥐의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다음,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을 분석해 뇌 기능을 밝혀낸 연구로, 우리나라 뇌 신경과학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또 'T-타입 칼슘이온 통로'에 관한 연구를 통해 뇌의 의식·무의식 상태를 조절하는 핵심 기전을 규명하고, 나아가 수면조절과 간질, 통증 치료기술 개발에 새로운 토대를 마련했다. 이런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업적과 국내 뇌과학 연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대한민국 국가과학자 1호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신 전 단장은 "우리의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내기 이전에 이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직접 실험실로 연락을 해 와 우리가 얼마나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됐고, 그로부터 같이 연구를 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던 게 가장 의미 있는 일로 기억된다"고 회고했다.

◇도전과 변화가 연속인 '연구 인생'=신 전 단장의 연구 인생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는 연속이었다. 자신이 하고 연구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찾아 의미가 있고, 중요하고, 임팩트 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는 1991년 한국에 돌아와 안정적인 교수 신분을 10년 만에 벗어 던지고, 2001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로 자리를 옮겼다. 출연연 연구자가 교수로 이직하는 사례는 자주 있어도, 교수가 출연연 연구자로 진로를 바꾼 것은 극히 드물었기에 그의 변신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의 변신 이유는 간단했다. 뇌 연구에 보다 전념하고,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선 출연연이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 전 단장은 KIST에서 오롯이 뇌 과학 분야의 연구자 길을 걷으면서 이전보다 더 연구에 집중하고, 다양한 공동 연구를 하면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쏟아냈다. KIST는 신 전 단장의 안정적인 연구 지원과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기관으로 한 단계 발돋움하기 위해 국내 처음으로 뇌과학연구소를 설립했고, 그것을 신 전 단장에 맡겼다.

그는 "KIST에서 연구를 하면서 다양한 연구성과를 거둘 수 있고, 그런 점을 인정받아 국민훈장(동백장)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제1호 국가과학자, 미국학술원 외국인 회원,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 등에 선정돼 연구 인생에 있어 큰 보람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그의 변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12년 7월 IBS(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연구단의 단장으로 선정되면서 'IBS 1호 단장'이란 타이틀도 얻었다. 당시 IBS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과학계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의문이 있었지만, '우수한 연구자 중심의 자율적 연구기관'이라는 IBS 설립 철학에 공감하고, IBS의 초청에 가장 먼저 응한 뒤 지원한 게 신 단장이었다.

◇'사회성의 뇌 기전 연구' 개척자로=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인간의 기억, 감정, 공감 등 인지 기능이 신경계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일어나는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신 전 단장의 제안으로 설립됐다. IBS 연구단 특성상 뇌 과학 분야 세계 유수의 연구자들이 그의 연구 수월성과 창의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연구단 설립이 가능했다.

신 전 단장은 IBS에서 뇌기능 조절 기전을 밝히는 연구에 더욱 깊게 파고 들었고, 그동안 뇌 연구의 미개척 분야인 '사회성의 뇌 기전 연구'에서 커다란 연구업적을 잇따라 거두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공감능력 조절의 뇌 기전에 대한 그의 연구 논문은 국제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연구자들이 그의 연구실이 개발한 '공감행동 실험법'을 차용해 연구에 활용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신 단장은 지난해 생물학 분야에서 유명한 세계적 콘퍼런스 행사인 '키스톤 심포지엄'의 총책임자로 선정, '사회성의 뇌회로'를 주제로 행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행사는 내년 봄으로 연기됐다.

신 전 단장은 "사회적 행동을 조절하는 뇌회로 관련 연구를 수행해 온 우리 연구단의 역량을 인정받았기에 심포지엄을 유치할 수 있었다"며 "이를 계기로 국제적으로 사회성 관련 뇌 연구 분야에서 우리 연구단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받게 됐다"고 평가했다.

◇나이 상관없이 대(代)를 잇는 연구 시스템 필요=기초과학 분야는 장기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응용과학과 달리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연구자를 믿고 장기간 기다려야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다.

신 전 단장은 "30년 넘게 뇌 연구라는 한 분야를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선후배, 동료 연구자들의 도움과 함께 정부의 지속적,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70살이 넘도록 연구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우리나라에 IBS와 같은 기초과학 연구기관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IBS에 강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연구자가 아무리 연구를 지속하고 싶어도 물리적 나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은퇴해야 하는 우리의 단절적인 연구 시스템과 문화를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훌륭한 연구성과를 내는 노년의 연구자가 물리적 나이를 이유로 퇴직하게 되면 그가 평생 해 온 연구를 이어갈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는 "일본만 하더라도 특정 교수나 연구자가 이끄는 학파가 있어 그의 제자라면 일단 실력을 인정한다"면서 "스승과 제자라는 사제 관계 속에서 대를 이어 연구를 하기 때문에 일본이 '기초과학 강국'이란 말을 듣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대부분은 60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수상의 영예를 안는다. 실제,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나이는 69세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노벨상을 받기까지는 약 31년이 걸린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신 전 단장은 "우리나라 연구자 정년은 출연연의 경우 61세, 대학은 65세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이상의 장기 연구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대학 교수들은 60살이 넘으면 대학원생도 받지 못한다"며 "나이에 상관 없이 우수한 연구성과를 내는 연구자라면 연구를 이어갈 수 있게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과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앞선 연구자들이 쌓은 지적 자산을 후학이 제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밝혔다.

기초과학 분야 후배 과학자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신 전 단장은 "무슨 연구를 하느냐가 시작인데, 기초과학은 결국 원리를 밝힌다는 점에서 임팩트가 큰 연구를 해야 한다"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연구를 시작하더라도 실험을 해 보면 안 되는 게 다반사인 만큼 안 되는 이유를 고민하고,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려는 시행착오 과정 속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포기하지 않는 연구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ICT과학부 차장·bongchu@dt.co.kr/사진=기초과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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