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개봉 앞둔 한예리 "배우로 늦게 꽃피었으면 좋겠다"

박돈규 기자 2021. 2. 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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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개봉 전 인터뷰
'미나리' 배우 한예리 /판씨네마

“촬영장에서는 제 연기를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숙소에서 윤여정 선생님의 유머와 여유를 보면서 비로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연세에 미국까지 촬영하러 오신 것부터 대단해 보였어요. 고유한 개성과 색깔 때문에 선생님을 찾는 것 같아요. 내가 가진 개성과 색깔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한예리는 “촬영장 밖에서 본 윤여정 선생님에 더 감명을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예리는 23일 오후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아름답게 꽃피는 순간이 혹시 있다면 나중에 왔으면 좋겠다”며 “윤여정 선생님처럼 여유가 생길 때까지 그 시기를 미루고 싶다”고 했다.

영화 미나리 예고편이 공개됐다./판씨네마

3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향해 미국 아칸소로 막 이주한 가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농장을 일굴 꿈에 부풀어 있지만 엄마 모니카(한예리)는 한숨부터 짓는다.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고 남편은 틈틈이 우물을 파고 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심는다. 심장이 약한 막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 이 구멍을 메워줄 해결사는 친청엄마. 순자(윤여정)가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과 미나리씨를 싸들고 도착하자 스크린에 활기가 돈다.

‘미나리’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관객상부터 최근 미국영화연구소(AFI) 올해의 영화상까지 무려 68관왕을 차지하며 달려왔다. 오는 28일(현지시각)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있고 4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몇몇 트로피에 근접한 다크호스로 꼽힌다. 다음은 일문일답.

-개봉을 앞둔 심정은.

“개봉 전부터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골든글로브 후보로 지명되는 등 이슈가 많았다. 혹시라도 ‘기생충’ 같은 영화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다. ‘미나리’는 담담한 드라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는 않다. 한국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면서도 겁이 난다.”

-1980년대 이민 가족 이야기인데 공감대가 높다. 연기할 때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1980년대가 배경이지만 이 가족이 살아가는 방식은 되게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생활 태도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다. 변하긴 했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제이콥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가족이 흩어지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았다.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뿌리가 깊어서 이 가족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셈이다.”

-시나리오를 읽은 첫인상은?

“번역된 초고를 읽었을 땐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려웠다. 감독님을 만나고 나서 달라졌다. 뭐든 이 사람과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유년 시절과 부모,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저와 비슷해 신기했다. 잘 만들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 영화 제목 ‘미나리’를 들었을 때 기분은?

“사실 촬영장에서 엔딩이 바뀌었다. 영화로 다시 보니 너무 좋았다. 이렇게 따뜻한 엔딩이라니, 안도하게 됐다. ‘미나리’라는 단어가 주는 생명력을 표현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역할 중 소화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라면.

“모니카로 그 공간 안에 존재하려고 애썼다. 벌어지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모니카의 방식대로 표현하려고 했다. 두 아이가 너무 편안하고 낯도 안 가리고 예뻐서 자연스럽게 엄마를 연기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니 어색하지 않아 다행이다.”

-한인마트 앞에서 다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굉장히 빨리 찍은 장면이다. 제이콥의 결심을 듣고 다시 생각해볼 수 없겠냐고 묻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데, 모니카는 마트 안에서부터 울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고, 그럼에도 제이콥을 사랑해 힘들었다. 남편이 변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모니카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가장 유쾌했던 순간은.

“넓은 필드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 그네 달아주고 술래잡기도 하면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관객이 열광해 진짜 얼떨떨했다. 배우는 자기 장면부터 보기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다. 그런데 마지막엔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느꼈다.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봤을 땐 그 영화의 미덕이 보이더라.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 반응이 더 뜨거운 것 같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직접 부른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미국 관객이 뜻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 노래에 ‘미나리’의 정서를 담으려고 애썼다. 영화제 주제가상 후보에 오를 줄은 몰랐는데 기분이 좋다.”

-미국 촬영은 첫 경험이다.

“어떤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짐을 싸 비행기에 타는 순간 겁부터 났다. 어떻게 준비할까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도와주는 분들이 많았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그들과 같이 고민하고 대화하면서 용기를 얻었다.”

-당신에게 가족이란?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부모님 세대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전에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어떤 희생을 했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게 됐다. 길러주신 데 대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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