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역사에도 '추상화 외길'..전설이 된 거장들 작품 한눈에

전지현 2021. 2. 2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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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랑 내달 6일까지 '한국 전설의 추상회화전'
김환기·윤형근·박서보·정상화·하종현 등
현대미술 독보적 작품세계 펼쳐온 9명 작가
80~100호 대작 18점 한데모아 전시
'인사동 터줏대감' 노승진 노화랑 대표
"힘든시절 온몸 던져 한국미술 만들어온 작품"
김환기 `무제 22-Ⅲ-70 #158`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한국 추상화 거목 9명의 작품들이 저마다 특별한 광채를 빛내고 있다. 어느 하나 기죽지 않은 채 작가의 개성과 순수, 고집을 드러낸다. 김환기(1913~1974), 윤형근(1928~2007), 박서보(90), 정상화(89), 하종현(86), 최명영(80), 서승원(79), 이강소(78), 김태호(73)의 80~100호 대작 2점씩 총 18점을 모은 기획전시 '한국 전설의 추상회화전'이 24일 개막한다. 최소 9000만원에서 최대 50억원에 이르는 고가 그림들이 코로나19로 얼어붙은 화랑가의 봄을 재촉한다.

1977년 개관한 '인사동 터줏대감' 노화랑의 노승진 대표(72)가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면서 인연을 맺어온 거장들의 추상화 작품을 한데 모았다. 노 대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수난의 역사를 관통하면서도 꿈과 희망으로 평생 화업을 일군 작가들로 이제 전설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며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등한시하던 예술 세계에 온몸을 던져 우리를 위로하는 한국 현대미술을 만들어온 이들이야말로 코로나19 시대에 귀감이 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윤형근의 1996년작 `청다색`
먼저 2001년 개인전을 열었던 김환기는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132억원을 기록한 푸른 점화 '우주'로 최고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번 전시에서는 검은색과 붉은색, 녹색 점들을 찍은 1970년작 '무제 22-Ⅲ-70 #158'이 눈에 띈다. 뉴욕에서 살았던 김환기는 한국의 산과 바다, 하늘을 향한 그리움을 점으로 찍어 표현했다. 김환기의 사위인 윤형근 개인전은 1999년 열렸다. 당시 작가는 검은 사각 기둥 2개가 차지한 '청다색' 연작에 대해 "장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노 대표는 "옛날 시골 장독 색깔이 나는 '청다색' 연작은 꾸밈이 없고 한국 고유의 독특한 맛이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색이 보다 검정에 가까우며 번짐 효과도 작아 다소 엄격해 보이는 1996년 '청다색' 등이 걸려 있다.

박서보 `묘법 NO.130201`
하종현 `접합 19-57` [사진 제공 = 노화랑]
단색화 열풍을 이끈 박서보는 2015년 개인전을 했으며 그룹전에도 수차례 작품을 내줬다. 이번 전시장에는 물에 불린 한지를 캔버스에 붙여 연필이나 뾰족한 것으로 선을 그어 오욕칠정을 버린 회색 '묘법 NO.130201'(2013)과 갈색 '묘법 NO.110903'(2011)이 나왔다. 노 대표는 "1980년대 '에콜 드 서울'에서 박서보 선생의 150호 작품을 사면서 인연을 맺었다"며 "인간미가 있고 약속을 지킬 줄 아는 멋쟁이 선생"이라고 했다.

정상화는 전시를 연 적은 없지만 작업 과정이 독특하고 작품이 끌어당겨 구입한 적이 있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뜯어내기를 반복한 흰색 '무제 86-3-9'(1986)와 청색 '무제 90-3-4'(1990)는 각각 설원과 바다를 연상시킨다. 노화랑에서 하종현미술상 시상식을 열었던 하종현은 붉은색 '접합 19-57'(2019)과 회색 '접합 20-72'(2020)를 걸었다. 걸쭉하게 갠 유성물감을 캔버스 뒤에서 밀어 마대천 전면으로 맺히게 한 뒤, 넓은 붓으로 아래에서 위로 밀어 맨 끝에 물감의 잔해들이 남은 작품들이다.

정상화 무제 90-3-4
김태호 내재율 2020-51
최명영의 붉은색 '평면조건_20-815'(2020)와 회색 '평면조건_20-821'(2020)은 각각 손가락과 붓으로 물감을 밀어냈다. 2002년, 2017년 개인전을 연 서승원은 색의 경계와 형태의 소멸을 보여주는 '동시성 19-912'(2019)와 '동시성 19-913'(2019)을 걸었다. 1997년, 2005년, 2006년 개인전을 열었던 실험미술작가 이강소는 유려한 서예 필획과 오리 형상을 결합한 '청명-18107'(2018)과 '청명 16085'(2016)를 내세웠다. 2001년, 2006년, 2010년, 2014년 개인전을 연 김태호는 물감을 중첩한 후 조각도로 깎아낸 노동집약적 추상화 '내재율 2020-83'(2020)과 '내재율 2020-51'(2020)을 펼쳤다. 30여 년 친분을 이어온 노 대표는 "예전에는 벌집 형상으로 다가왔는데 요즘에는 음악이 나오는 고급 스피커 같다"고 말했다.
이강소 청명-18107
이번 전시 서문을 쓴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작가 대부분이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참가를 거부하며 도전적인 전위작가의 입지를 구축했다"며 "이들은 모두 한국 현대미술 흐름을 형성한 주역들로 단색화 작가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3월 6일까지.

서승원 동시성 19-913.
최명영 평면조건 20-815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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