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익숙한 '냉전 질서'에 다시 휩쓸리다

길윤형 2021. 2. 2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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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의 신냉전 한일전]길윤형의 신냉전 한일전 _17
제6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가 열린 2019년 11월17일 타이 방콕의 아바니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왼쪽)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가운데),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이 사진을 찍은 뒤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짓누르는 불신과 대립을 극복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실현하려는 한국의 처절한 ‘현상변경 전략’이 좌절된 지점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냉전의 익숙한 ‘관성’이었다. 북·중·러의 도발에 맞서려면 한·미·일이 굳게 단합해야 한다는 미국의 채근은 지소미아 종료 시점인 11월23일 0시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거세어질 터였다.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2019년 10월5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에 청와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틀 뒤인 7일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 머리발언에서도, 8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도 관련 소식을 일절 입에 올리지 않았다.

청와대의 공식 언급이 나온 것은 결렬로부터 13일이 흐른 18일 주한 외교단 초청 리셉션 환영사를 통해서였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지금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라는 역사적 변화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마지막 벽을 마주하고 있다. 그 벽을 넘어야만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고 밝은 미래를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나흘 뒤인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한반도는 지금 항구적 평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고비를 마주하고 있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협상 결렬을 ‘마지막 고비’라고 평가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결의를 밝혔지만, 냉정히 생각해볼 때 2018년 초 ‘기적’처럼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이미 동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짓누르는 불신과 대립을 극복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실현하려는 한국의 처절한 ‘현상변경 전략’이 좌절된 지점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의 익숙한 ‘관성’이었다. 미국은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방치돼왔던 한·미·일 3각 동맹을 정상화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작업은 한국이 8월22일 내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뒤엎는 데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칼을 빼 들고 나선 것은 미 국방부였다. 랜들 슈라이버 인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토론회에서 “우리는 우리 동맹들에 (한-일) 갈등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중국·러시아·북한이라는 사실을 계속 일깨울 필요가 있다”며 11월 타이 방콕에서 예정된 “아세안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미·일) 3개국 국방장관 회담을 열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도 8일 기자회견에서 “기회가 있다면 정경두 국방장관과 만나는 데 인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중·러의 도발에 맞서려면 한·미·일이 굳게 단합해야 한다는 미국의 채근은 지소미아 종료 시점인 11월23일 0시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거세어질 터였다.

이 무렵 청와대 역시 지소미아 종료가 몰고 온 엄청난 ‘후폭풍’을 실감하고, 11월 초 타이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하는 등 궤도 수정을 시도했다. 청와대는 이 회담을 통해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일본은 ‘수출규제 철회’ 문제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이 성공했다면, 한국은 별다른 국가적 위신의 손상 없이 8월 말 내린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거둬들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한국이 일본에 재차 접근한 것은 10월 중순이었다. 문 대통령은 14일 태풍 ‘하기비스’로 큰 피해를 받은 일본에 위로전문을 보낸 데 이어, 정부 내 유일한 ‘지일파’인 이낙연 국무총리를 도쿄에 파견했다. 일왕 즉위식 참석을 명분 삼아 22일 방일한 이 총리는 24일 아베 신조 총리와 얼굴을 마주했다. 이 만남에 애초 할당된 시간은 10분이었지만, 오전 11시12분부터 33분까지 21분간 면담이 이뤄졌다. 이 총리는 한국이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른바 ‘65년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일본의 우려를 인식한 듯 “한국도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요청하는 문 대통령의 친서를 건넸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 판결은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일-한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무너뜨렸다”며 냉담하게 반응했다. 엿새 뒤인 30일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다음달 정상회담을 열지 않는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유화적 내용의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화해를 시도했던 지난 8월에 이어 일본이 다시 한번 한국이 내민 손을 거세게 뿌리친 것이었다.

일본이 회담을 거부했으니 억지로라도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문 대통령은 11월4일 아침 8시35분(방콕 현지시각)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대기실에 입장하는 아베 총리를 옆에 있는 소파로 이끌어 11분 정도 환담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필요하다면 보다 고위급 협의를 갖는 방안도 검토해보자”고 제의했다. 일본이 이미 거부한 한-일 정상회담을 ‘재요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우리가 1965년 일-한 청구권 협정에 관한 원칙(한-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모든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종래 입장을 두번 되풀이해 말했다. 양국 정상이 “우호적이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환담을 이어갔다”는 청와대 발표와 달리 일본 총리관저는 자료를 따로 내놓지 않으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정상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의 길이 막히자 한국 정부는 실무회담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마키노 요시히로 <아사히신문> 기획위원의 2020년 1월 <분게이슌주>(문예춘추) 기고를 보면, 지소미아 종료를 2주 앞둔 11월10일 시작된 실무회담의 대표로 나선 이는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과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 라인이었다. 조 차관이 ‘최소 2번’ 일본을 극비 방문하는 치열한 협상 끝에 ①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통고를 정지한다, ②한-일 과장급에서 진행 중이던 수출규제 조처에 대한 협의를 국장급으로 올린다, ③수출규제 철폐를 위한 로드맵을 만든다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국은 “수출규제 협의에 기한을 정하자”고 주장했지만, 일본은 그렇게 되면 “철폐를 전제로 한 협의가 된다”며 거부했다.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는 ‘현금’을 내놓은 데 견줘, 일본은 수출규제에 대한 협의를 강화하는 ‘어음’만을 제시했다. 한국의 ‘양보안’이었다. 이 안은 19일 문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조세영-아키바의 치열한 실무협상이 이어질 무렵,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라’는 미국의 노골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6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주역 중 하나인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과 70분에 걸친 만남에서 “지소미아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며 연장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15일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의 종료나 한-일 갈등으로 득을 보는 곳은 평양과 베이징”임을 재차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은 회견 뒤 마크 밀리 합참의장,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등과 문 대통령을 예방해 지소미아를 연장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문 대통령은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군사정보를 공유하긴 어렵다”는 한국의 기본 입장을 설명하며 맞섰다.

이틀 뒤인 17일엔 슈라이버 차관보가 10월 초 예고한 대로 한·미·일 3개국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오후 3시 반, 방콕 아바니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시작된 회담에 앞서 세 나라 장관은 사진 촬영에 응했다. 에스퍼 장관은 정경두 국방장관과 고노 방위상과 손을 맞잡고 “동맹 맞죠, 동맹”(allies, right? allies)이라고 물었다. 정 장관과 고노 방위상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절체절명의 마지막 순간에서 김현종 제2차장은 18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미국을 극비 방문해 마지막 설득에 나선다. 하지만 매슈 포틴저 미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김 차장에게 “지소미아는 유지해야 한다”고 차갑게 반응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청와대는 조세영-아키바 안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문 대통령을 상대하고 싶지 않다. 지소미아를 종료하려면 종료하라”는 격앙된 입장이었지만, 나고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담 참석을 위해 방일 중이던 스틸웰 차관보가 21일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에게 “일본도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설득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한-일 지소미아 갈등이 ‘한국의 양보’로 정리되어 가던 21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기묘한 자료 하나를 내놓는다. 문 대통령이 지난 5일 “부산에서 25일부터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초청하는 친서를 보냈”고, 이후 “몇 차례나 국무위원장이 못 오신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청을 보내”왔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판문점·평양·백두산에서 한 약속이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는 지금의 시점에 형식뿐인 북남 수뇌상봉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며 문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이 친서를 보낸 날은 방콕에서 아베 총리를 억지로 소파에 앉혀 대화를 나눈 다음날이었다. 김 위원장의 부산 방문이 성사됐다면,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튿날인 22일 오후 6시. 김유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재차 춘추관 2층 브리핑실 연단에 올랐다. 두달 전 자신이 발표했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는 내용이었다. 1분 남짓의 브리핑이 끝났지만, 김 차장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쉽게 연단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무거운 침묵이 브리핑실을 짓누르고 있었다. 국가의 모든 위신을 걸고 벌인 한-일 외교전에서 우리가 백기를 든 것이었다.

※ 마지막회인 18회에선 이후 현재까지 상황과 한-일 관계의 미래에 대해 다룹니다.



길윤형 | 통일외교팀장.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초년 기자 시절부터 강제동원 피해 문제와 한-일 관계에 관심을 갖고 여러 기사를 써왔다. 2013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한겨레>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아베 정권이 추진해온 다양한 정책을 가까이서 살펴봤다.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아베는 누구인가>, <26일 동안의 광복> 등을 썼고,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아베 삼대>를 번역했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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