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저울질하지 말 것-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설거지도 업무다

2021. 2. 2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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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의 역할은 무엇일까. 성과를 내는 것이 제일의 임무겠지만 중요한 것이 있다. 오너나 상사의 그릇된 판단과 실패의 결과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즉, 야구에서 불펜이나 구원 투수의 역할이다. 선발 투수도 중요하지만 경기 중간에 투입되어 이미 승패가 기운 게임에서도 던져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저울질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일단 뛰는 것이다. 당신을 지켜보는 이는 관객만이 아니다. 구단주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위기에서 절대 저울질하지 마라

K기업 박 상무. 그는 입사하면서부터 엘리트였다. 공채 시험 3위, 이후 기획실, 해외전략실, 비서실, 경영재무팀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차장 때는 미국 지사에 파견되어 파견 기간 중 아이도 낳아 아이 둘에게 ‘미국 시민권’을 선사하기도 했다. 부장 때는 오너 3세의 총애를 받으며 이른바 K기업 장래 CEO로 자타가 인정했다. 물론 박 상무가 오너가에 대한 무한 충성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는 업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획력과 업무 적용 실천력, 위기를 타개하는 리더십에서도 동급을 뛰어넘었다. 오너 3세의 신뢰는 물론 그룹 회장도 박 상무의 이름을 차장 시절부터 기억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인품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부서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자발적으로 일을 하게 하는 리더십도 탁월했다. 다만, 박 상무에게 부족한 것은 일의 결과에 냉혹했고 자만심이 넘친다는 점.

동기 중 가장 먼저 임원으로 승진한 그는 상무로도 제일 먼저 승진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재무팀. 박 상무는 그룹 지주사인 K기업 경영재무팀을 총지휘하면서 회사를 알차고 짜임새 있게 운영했다. 어느 날, 오너 3세인 부사장이 그를 호출했다. 그리고 그에게 비밀리에 해외 기업의 M&A를 준비시켰다. 자금만 무려 1조3000억 원이 투입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박 상무는 회사의 재무 구조를 면밀히 검토했다. 단독으로 하는 방법, 펀드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입찰하는 방법 등등. 박 상무는 컨소시엄을 형성하면 자금 부담은 덜지만 온전한 지배권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 단독으로 하면 자금 조달에 부담은 되지만 지배권을 장악해 향후 이익 창출이나 가치 상승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정리하고, 부사장에게 단독 입찰을 권유했다. 다만 인수 회사의 재무구조에 의문점이 있어 이를 더 파악해야 하고 입찰 금액도 총 8000억 원이 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부사장은 이미 펀드사와 컨소시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부사장과 펀드사의 오너 2세는 오랜 친구였다. 부사장은 결국 컨소시엄으로 M&A를 성공시켰다. K기업은 7000억 원, 펀드사는 6000억 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는 K기업에 악몽으로 다가왔다. 총 1조3000억 원의 자금 중 7000억 원을 투입했지만 인수 회사는 밑 빠진 독이었다. 재무 상태를 점검해 보니 장부 외에 숨겨진 부채가 무려 3000억 원이 넘었다. 부사장은 곤경에 빠졌다. 아버지인 회장 앞에서 멋진 솜씨를 발휘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제 발등을 찍은 것이다. 부사장은 펀드사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펀드사 역시 회사의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말로 빠져나갈 궁리에 몰두했다.

부사장은 애초 인수 자금 7000억 원에 드러난 부채 3000억 원, 운영 자금 2000억 원을 투입해야 겨우 인수 회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부사장은 박 상무에게 SOS를 쳤다. 박 상무는 잠시 부사장의 애를 태운 뒤 그룹사의 자금과 은행권 차입 그리고 제3의 펀드사를 참여시켜 자금을 조달하고 인수 회사를 정상화할 수 있었다. 부사장으로서는 구사일생한 셈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인사 발령이 났다. 회사원들은 모두 경악했다. 모두 박 상무의 전무 승진은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박 상무가 별 볼 일 없는 계열사로, 그것도 상무로 발령 난 것이다. 회사원들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후 밝혀진 사실이지만 박 상무가 부사장의 능력에 대해 곳곳에 “형편없다”, “차후 부사장이 회장이 되면 K기업은 3년 안에 망한다”, “내가 아니었으면 부사장은 잘렸고, 아마도 후계자는 동생이 되었을 것이다” 등등의 말을 하고 다녔던 것. 설사 박 상무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박 상무로서는 오너 3세의 능력을 비하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 셈이다. 부사장 역시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회사에 박 상무의 라이벌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부사장에게 박 상무의 말과 행동을 전달했고 부사장은 박 상무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박 상무는 억울할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실패한 M&A를 겨우 정상으로 돌려놓은 공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버렸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박 상무가 놓친 것이 있다. 재계 서열 10위권 실력의 K기업에게 M&A는 비록 곤혹스런 상황이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K기업이 쓰러지거나 타격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부사장은 회장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기에 부작용 없이 M&A를 완성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박 상무가 능력을 발휘하면서 M&A를 조용히 마무리했다면 부사장은 아마도 박 상무를 중용했을 것이다. 오너는 그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물며 오너의 판단과 그 판단의 결과를 비판하는 것은 기업에서는 금기. 오히려 임원들에게는 그릇된 판단의 결과를 정상화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다. 또한 박 상무는 부사장의 구원 요청에 즉시 응하지 않았다. 검토하겠다는 명분으로 부사장의 애를 태운 것이다. 이 역시 부사장에게는 양지만 좇고 흙탕물에는 뛰어들지 않는 박 상무의 저울질로 받아들여졌다. 박 상무는 수많은 공을 세웠고 K기업의 번영에 분명 일조했지만 오너나 회사 입장에서 그러한 공을 세울 수 있는 예비군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직장 생활, 항상 양지만 있지도 항상 음지만 있지도 않다. 직장인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음지에서 더러운 물에도 뛰어들 때거나,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찬물에 손을 담글 때다. 몇 번의 공, 업무 성과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하라고 임원에게 고액 연봉을 주고, 차 주고, 사무실을 주는 것이다. 아무리 개인 능력이 있어도 회사는 팀플레이다. 그 팀플레이 안에서 개인기도 빛난다. 공을 세우고 성과를 올릴 때 특히 조심하고 겸손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직장 생활의 기본이다.

중국 전국 시대 명장 ‘백기’. 그는 전쟁터에서 신화적 존재였다. 그는 진나라 명장으로 훗날 진시황의 천하 통일 기초를 쌓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는 딱 한 번, 왕을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했고, 그의 다급한 구원 요청을 외면했다. 왕은 백기의 오만한 행동에 공을 모두 잊어버리고 오히려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백기는 모든 것을 잃었다. 살벌한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소리 없는 전쟁, 즉 상하 관계에서 1패를 기록하며 목숨까지 잃었다.

▶공은 지워지고 실패는 쌓인다

전국 시대를 끝낸 이는 진 시황제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25년 만인 기원전 221년에 천하 통일을 완성했다. 시황제의 천하 통일에는 수많은 공신이 있었다. 승상 이사를 비롯해 장군 왕전, 몽염 등이다. 물론 진나라의 천하 통일은 예견되었다. 진나라는 55년간 재위한 소양왕 때 이미 그 기반을 구축했다. 소양왕은 강력한 군대와 수많은 재물과 군량을 고스란히 시황제에게 물려주었다. 시황제는 이를 잘 활용했다. 소양왕에게는 믿음직한 야전 사령관 백기가 있었다. 즉, 시황제의 천하 통일은 1대 소양왕과 백기를 거쳐 2대 시황제와 왕전, 두 콤비의 활약이 있어 가능했다. 백기는 왕전, 염파, 이목과 함께 전국 시대 4대 명장으로 불리는 ‘전투의 화신’이다. 그는 30여 년간 7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며, 약 200만 명의 적군을 죽였다.

백기는 소양왕에게 ‘무안군武安君’, 즉 ‘무로 세상을 편안케 한다’는 칭호까지 받았다. 그의 활약으로 초나라는 수도를 옮겼고, 조나라는 군사력을 상실했으며, 한나라와 위나라 등은 창을 거꾸로 들고 항복했다. 그는 진나라 군사들에게는 승전의 보증 수표,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편 백기에게는 라이벌 재상 범수가 있었다. 그는 공을 세우는 백기를 시기했다. 범수는 조나라 세객 소대의 세치 혀에 넘어가 조나라 수도 한단 점령을 눈앞에 둔 백기의 군대를 철수시켰다. 백기는 땅을 쳤다. “한 달만 더 공격하면 조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는데”라는 그의 한탄은 소양왕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다.

소양왕 역시 후회했다. 다시 조나라 공격을 결정한 소양왕은 백기에게 공격군의 지휘를 맡겼지만 백기는 병을 이유로 거절했다. 진나라 군은 조나라 군의 수비에 막혀 패배했다. 백기는 이를 보고 “내 계책을 듣지 않으니 조나라 군 따위에게 패전했다”는 말을 했다. 입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이 소리를 듣고도 소양왕은 꾹 참았다. 다시 백기에게 군 지휘를 맡겼다. 백기는 또 거절했다. 소양왕이 왕의 체면을 버리고 다시 부탁하고 사정도 했지만 백기는 듣지 않았다. 그 순간, 범수는 소양왕에게 백기의 불충을 꼬집었다. 소양왕은 백기를 유배 보냈다. 범수는 라이벌 백기의 목숨을 노렸다. 소양왕은 백기에게 칼을 보내고 자결하라 명령했다. 전국 시대 명장 백기는 수많은 공을 세웠지만 단 한 번의 거부, 단 한 번의 불만으로 목숨을 잃었다.

산시성(섬서성) 출신 백기는 기원전 294년 좌서장으로 한나라를 공격하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그 뒤 그의 전공은 눈부셨다. 백기는 이궐에서 24만 명의 적군을 죽이고 한나라 성 5개를 함락시켰으며 황하를 건너 한나라 중앙을 휩쓸었다. 이 공로로 백기는 국위에 봉해졌다. 백기는 위나라를 공격해 60여 개 성을 점령해 위나라를 초토화시켰다. 그의 매서운 공격에 초나라는 수도 영성이 함락되고 결국 수도를 옮겼다. 진나라, 아니 백기에 대항하기 위해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는 연합군을 결성했다. 하지만 백기는 대승했다. 백기는 세 나라 연합군 13만 명을 몰살했다. 이 공으로 백기는 태위가 되었고 다른 국가들은 백기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백기는 한나라를 공격해 5개 성을 점령하고 군사 5만 명을 모조리 몰살했다.

이어 역사적 비극인 장평대전이 벌어진다. 이 전쟁의 발단은 상당 땅이다. 상당은 각 제후국과 연결되는 요충지였다. 이 상당 땅을 가장 약세인 한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다. 진나라는 상당 지역을 탐냈다.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초나라를 제압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가 바로 상당이기 때문이다. 진나라는 상당을 공격했다. 한나라는 진나라 군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상당 태수 풍정이 꾀를 냈다. 그는 조나라에게 상당 땅을 주는 조건으로 연합을 제안했다. 풍정은 조나라의 강한 군대를 끌어들여 진나라에게 맞설 계획이었다. 조나라 왕은 고민에 빠졌다. 상당을 손에 넣으면 중요한 요충지를 장악하지만 진나라와 일전을 각오해야 했다. 욕심 많은 조나라 왕은 한나라 풍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노한 진나라 소양왕은 백기를 대장으로 군대를 출전시켰다. 조나라 역시 염파를 대장으로 진나라 군에 맞섰다. 염파는 백기 못지않은 백전노장이었다. 염파는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구전에 돌입했다. 염파의 전술은 버티면 보급로가 길어지는 진나라 군이 불리하고, 그때 진나라 군을 기습한다는 것. 염파의 전술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진나라 군이 아무리 공격해도 조나라 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백기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진나라 재상 범수가 꾀를 냈다. 진나라 군과 백성은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사실 진나라 군과 백기는 염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나라 명장 조괄이 두려운 것이다.” 범수는 뇌물을 조나라 조정에 뿌렸다. 소문이 조나라 효성왕의 귀에 들어갔다. 효성왕은 염파의 소극적인 작전에 불만이 있던 차에 이 소문을 듣자 염파를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젊은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조괄은 우쭐한 마음에 백기와 정면으로 맞섰다. 진나라 군이 서서히 도망을 쳤다. 신이 난 조괄은 백기의 뒤를 쫓았다. 조괄의 부대가 본대와 멀어졌다. 그 순간 진나라 군이 조나라 군 본대와 조괄 부대 사이를 끊었다. 조괄은 포위되었다. 며칠이 지났다. 조괄의 부대는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어차피 죽는다’ 판단한 조괄은 결사대를 이끌고 진나라 본진으로 쳐들어갔다. 결국 조괄은 전사하고 조나라 군 40만 명은 포로가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상당 지역 출신이었다.

포로 40만 명을 먹이는 것도 진나라 군에는 부담이었다. 장수들은 백기에게 포로 처분을 문의했다. 백기는 명령했다. “그들은 조나라에게 항복했다. 살려 두어도 진나라를 배신할 것이다. 모조리 죽여라.” 결국 조나라 군 40만 명은 모두 생매장당했다. 당시 살아난 조나라 군은 어린 군사 240명뿐이었다.

▶상사는 자신의 위기에서 부하를 평가한다

백기는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진군했다. 조나라는 맞섰지만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백기의 군은 막강했고 이미 조나라의 군사와 백성들이 백기에게 두려움이 있어 한단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조나라의 세객 소대는 비밀리에 진나라 승상 범수를 찾았다. “백기의 공이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장차 승상께서도 백기의 발 아래 서야 할 것 같습니다. 진나라에게 중요한 성을 드리겠습니다. 화친을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범수는 소양왕에게 말했다. “주군, 우리 군대는 지쳐 있습니다. 한단은 조나라 수도로 총력 방어전을 펴고 있어 쉽게 함락하기 어렵습니다. 조나라에서 성을 바친다고 하니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군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소양왕은 백기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백기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는 생각에 소양왕과 범수에 대한 원망이 커졌다. 얼마 뒤, 소양왕은 백기를 철수시킨 것이 후회되었다. 다시 군대를 출전시키며 백기에게 군 지휘를 맡겼다. 백기는 “때가 아닙니다. 조나라 군대가 한단에서 철통 방어를 하고 초나라, 위나라가 협공하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라고 거절했다. 소양왕은 백기 대신 왕릉에게 군대를 맡겼다. 왕릉의 군대는 백기의 예견처럼 삼국 연합군에게 참패했다. 백기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조나라를 공격하니 참패한 것이다”라고 소양왕을 비웃었다. 소양왕은 백기가 함부로 입을 놀린 것을 알고도 다시 한번 군대의 지휘를 맡겼다. 백기는 병이 중하다며 출전을 거부했다. 소양왕은 왕흘을 대장으로 조나라 군을 출전시켰다. 이 원정군도 참패하고 말았다. 소양왕은 분노를 누를 수가 없었다. 진나라 군이 조나라에게 졌다는 사실보다 백기가 자신의 사정에 가까운 부탁을 두 번이나 거절하고 비아냥거린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소양왕은 백기를 함양으로 귀양 보냈다. 백기는 귀양을 떠나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범수가 소양왕에게 “백기를 죽여야 합니다. 백기는 왕명을 거역했을 뿐 아니라 혹시 귀양지에서 탈출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다면 진나라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쓰지 못할 바에는 죽이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참소했다.

곧바로 소양왕은 사신을 보냈다. 귀양지로 가던 도중에 사신이 달려와 백기에게 왕의 뜻이라며 단도를 주었다. 이 단도는 자결을 의미했다. 백기는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전쟁에 임해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수많은 공을 세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죽을 이유를 모르겠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이 투항했을 때 그들을 생매장해 죽인 것이다. 그 원한으로 내가 오늘 이 지경에 빠져 죽나 보다”라고 한탄하며 결국 자결했다.

백기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몰랐다. 단지 떼죽음 당한 조나라 군사의 원한이 자신을 해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백기가 죽어야 할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1인자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1인자는 자신을 비하하고 특히 무시하는 듯한 발언과 행동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구나 백기는 라이벌의 존재를 망각했다. 바로 범수다. 사마천은 “백기는 명장이었다. 전략을 세워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경쟁자 범수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왕전과 더불어 명장이었지만 인품이나 처세에 결점이 있었다. 한 자가 길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긴 것과 비교하면 짧고, 한 치는 짧지만 상대적으로 더 짧은 것만 비교하면 길다. 한 자가 상황에 따라 한 치만 못한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지만 넘치는 것이 모자라는 것보다 낫지 않다”고 백기를 평가했다.

백기는 7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터에서 병사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 들었다. 병사들은 백기의 솔선수범 리더십을 충심으로 따랐다. 백기는 전쟁에서는 완벽한 장군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무적으로는 하수였다. 백기는 순진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공이 많으면 다른 이의 질투와 시기도 많아진다. 백기는 전쟁에서 무적이었지만 노련한 범수에게 당했다. 범수는 위나라 출신으로 제나라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반역죄로 죽을 고비에서 탈출해 진나라로 망명했다. 범수는 타국 출신으로 진나라 재상까지 오르기 위해 온갖 풍파를 다 겪은 인생의 백전노장이었다. 전쟁터만 겪은 백기와 인간관계 달인 범수의 권력 투쟁에서 권모술수가 뛰어난 범수의 승리는 뻔한 결과였다.

30년 이상 전쟁터를 누비며 200만 명이 넘는 적군을 몰살한 백기. 그는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졌다. 그것도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에게 져 목숨을 잃었다. 그 이유는 ‘인간 도살자’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수많은 목숨을 빼앗은 원한도, 라이벌 범수의 모략도 아니다.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린 탓이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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