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칼럼] 분양제도의 명분과 실제

한겨레 2021. 2. 2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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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칼럼]

30대 신혼부부 우선분양 제도는 세대 내 계층 간 형평성 차원에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서울의 아파트 분양가는 7억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비정규직은 물론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30대 청년에게 분양 혜택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결국 30대 청년세대 내에서도 재산을 물려받거나, 대기업, 공공기관, 금융권 등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일부 고소득 계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김기식 ㅣ 더미래연구소장

내집 마련은 대다수 국민의 꿈이다. 주거안정의 근거이자 가장 유력한 재테크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분양권 당첨은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치 않다. 2020년 11월 기준 청약통장 1순위 가입자만 1496만명이다. 로또 당첨에 빗대 로또 분양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 한자녀 이하를 둔 40~50대는 더욱 그렇다. 분양제도가 30대 신혼부부와 다자녀 등 부양가족이 많은 가구에 혜택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분양의 85%, 민간분양의 평균 54%가 특별공급으로 배정된다. 가장 큰 수혜자는 30대 신혼부부다. 공공분양의 30%, 민간분양의 20%가 배정되고, 25%의 생애최초 특별공급 물량에도 신청자격이 주어진다. 신혼희망타운 등 신혼부부만을 대상으로 한 주택공급도 있다.

청년 주거지원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30대 신혼부부에게 편중된 물량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세대 간, 세대 내 형평성 차원에서 바람직한지는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생애주기와 경제활동의 남은 기간을 고려하면 내집 마련의 필요성과 절박함은 40~50대 장기 무주택자가 30대 신혼부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지 않은 대다수 청년에게 30대는 경제활동으로 자산을 축적할 시기지만, 40~50대 서민들에겐 분양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30대 신혼부부 우선분양 제도는 세대 내 계층 간 형평성 차원에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서울의 아파트 분양가는 7억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2018년 기준 30대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중위소득은 286만원이다. 비정규직은 물론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30대 청년에게 분양 혜택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더구나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소득 기준도 점차 완화되어 올해부터는 월소득 777만원(맞벌이 889만원)까지 자격이 주어진다. 월소득 777만원은 30대 임금근로자 상위 6% 수준이고, 부부합산 연소득 1억원은 전국 무주택 신혼부부의 상위 8%에 해당한다. 결국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 확대는 30대 청년세대 내에서도 부모한테 재산을 물려받거나, 대기업, 공공기관, 금융권 등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일부 고소득 계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책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다른 효과 특히 형평성에 유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30대 신혼부부에게는 양질의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여 내집 마련을 착실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40~50대 장기 무주택자에게 분양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양가족 수에 가장 높은 배점을 주고 있는 청약가점제 역시 가구 변화를 반영해 재검토가 필요하다. 수도권 민간분양의 대부분은 청약가점제에 의해 입주자를 선정한다. 2020년 분양을 받을 수 있었던 청약가점은 서울의 경우 61.83점으로, 부양가족 수에서 5~10점밖에 받지 못하는 1~2인 가구는 납입기간, 무주택기간 등 다른 항목에서 만점을 받아도 분양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2인 가구 비중은 2000년 34.5%에서 2019년 58%로 급속도로 늘어난 반면, 4인 이상 가구는 44.4%에서 21.2%로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2047년에는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72.3%까지 늘고 4인 이상 가구는 8.4%로 줄어들 전망이다. 1~2인 가구의 증가는 비혼, 이혼 및 한부모 가구, 독립거주 노인 가구의 증가 등 가구 구성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출산 장려라는 정책적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청약가점 제도가 도입된 지 14년, 그동안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19년 0.918명으로 감소했다. 정책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출산 자녀 수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는 부양가족 수에 대한 가점 혜택이 출산율을 증가시키기보다는 다자녀를 둘 수 있는 고소득 계층에 추가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다자녀, 노부모 부양 가구에는 각각 10%, 5%의 특별공급 물량이 배정되고 있다. 이중의 혜택을 주는 셈이다. 노부모, 다자녀 특별공급과 부양가족 수 배점 중 하나를 폐지하거나 비중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은 기대한 효과가 없다면 과감히 변경해야 한다. 또한 정책은 현실의 변화를 직시하고, 이를 반영해야 한다. 과거의 정책을 관성적으로 유지하면 정책의 허점,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효과가 왜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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