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모자(母子) 순국 진천 광혜원 4·3만세운동 재조명

강신욱 2021. 2. 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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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만세운동과 관련해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순국한 진천군 광혜원4·3만세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23일 진천군에 따르면 1919년 4월3일(음력 3월3일) 당시 만승면(현 광혜원면) 광혜원리 만세시위에서 순국한 박도철(朴道喆·1888~1919) 열사에게 올해 3·1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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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철 열사 등 현장서 4명 순국 등 충북 만세운동 최다 사상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1919년 3·1만세운동과 관련해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순국한 진천군 광혜원면 3·1만세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 왼쪽은 국가기록원 소장 3·1만세운동 피살자 명부의 박도철 열사 관련 기록. 오른쪽은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의 조선헌병대사령부 조선소요사건일람표의 광혜원 3·1만세운동 관련 기록. (사진=국가기록원·국사편찬위원회 제공) 2021.02.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진천=뉴시스] 강신욱 기자 = 1919년 3·1만세운동과 관련해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순국한 진천군 광혜원4·3만세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23일 진천군에 따르면 1919년 4월3일(음력 3월3일) 당시 만승면(현 광혜원면) 광혜원리 만세시위에서 순국한 박도철(朴道喆·1888~1919) 열사에게 올해 3·1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진천향토사연구회(광혜원만세운동기념사업회) 오인근 회원은 "모자의 한 맺힌 죽음이 102년 만에 풀어졌다"며 "당시 장터에 울려 퍼진 광혜원4·3만세운동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는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현창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 회원이 후손 등의 증언과 문헌 조사한 결과, 박 열사는 그동안 박치선(朴致先), 유치선(柳致先) 등으로 잘못 전해져 확인과 심사 과정이 길어지면서 서훈 결정이 늦어졌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박 열사 일가는 경기 안성, 경북 상주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박 열사의 공훈은 음성군 금왕면에서 작성하고 현재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3·1운동당시 일인으로부터 피살당한 애국자' 명부에서 확인됐다.

박 열사는 광혜원리(바들말) 매방앗간 앞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일본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며 항거한 박 열사의 어머니(이치원 추정)도 헌병의 총탄에 숨을 거뒀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만세운동에서 부부, 부모와 딸이 함께 순국한 예는 여럿 있지만, 모자가 함께 순국한 곳은 진천 광혜원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진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1919년 3·1만세운동과 관련해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순국한 진천군 광혜원4·3만세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4월3일 진천군 광혜원면에서 광혜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재현한 광혜원4·3독립만세운동. 2021.02.23 (사진=충북도교육청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혜원면 만세시위에서는 당시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일제 측 문헌에는 현장에서 4명이 사망하고 5명 또는 7명이 부상을 당했다.

1974년 펴낸 '진천군지'에는 박도철, 이치원, 김경윤, 윤광옥, 김득수, 김예원, 구모(이월면 동성리)씨, 성명미상(이월면 노은리) 등 9명이 순국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일제 자료보다 더 많은 인명피해다. 현장에서 심한 상처를 입은 적잖은 참여자들이 응급 처치도 받지 못하고 숨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광혜원 4·3만세시위에서는 윤병한(애족장)·남계홍(대통령표창)·이영호(대통령표창) 등 8명이 옥고를 치렀고, 수십명이 고문 등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ksw6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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