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례 포착 놓치고 2차례 경보 무시..군 경계, 바닥 드러냈다

박병수 2021. 2. 2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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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주민의 월남에 동해안 경계망이 뚫린 이른바 '잠수복 월남' 사건은, 군 영상감시병의 근무 소홀과 해안철책 배수로 관리 실패, 초동 대처 미흡 등이 어우러진 총체적 경계실패로 드러났다.

합참의 현장 조사 결과, 지난 16일 새벽 월남한 북한 주민은 해상감시카메라에 5차례, 부대 경계용 카메라에 3차례 등 모두 8차례 포착됐고 이 중 두 차례는 감시병 모니터에 '팝업창'이 뜨고 경보까지 울렸으나 감시병이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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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병 근무 소홀에 총체적 대응 부실
CCTV 등 감시장비 포착 못 알아채
3시간여 지나서야 '무단 월남' 확인
사단장 늑장 보고·진돗개 발령 지연
통과한 배수로는 감시목록에 없어
"경계병 기강 확립·배수로 전수조사"
합참 개선책에 '또 재탕대책' 비판
서욱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7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북한 주민의 월남에 동해안 경계망이 뚫린 이른바 ‘잠수복 월남’ 사건은, 군 영상감시병의 근무 소홀과 해안철책 배수로 관리 실패, 초동 대처 미흡 등이 어우러진 총체적 경계실패로 드러났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주 북한 주민이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인근 해상으로 헤엄쳐 월남한 사건에 대해 현장 조사를 마치고 22일 언론 설명회를 열어 그 결과를 설명했다.

합참의 현장 조사 결과, 지난 16일 새벽 월남한 북한 주민은 해상감시장비에 5차례, 부대 울타리 경계용 카메라에 3차례 등 모두 8차례 포착됐고 이 중 두 차례는 감시병 모니터에 ‘알림창(팝업창)’이 뜨고 경보까지 울렸으나 감시병이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월남한 북한 주민은 해안철책 밑으로 난 배수로를 통해 들어왔으나, 이 배수로가 부대관리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 않는 등 관리 사각지대에서 방치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초동조처도 미흡했다. 월남한 북한 주민이 당시 새벽 4시16분 민간인 통제선 검문소 근무자에 의해 확인됐으나 사단 등 상급부대 보고는 30여분 뒤에나 이뤄졌다.

합참은 이에 대해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한다며 △경계작전 수행요원의 기강 확립 △과학화경계체계 운용 개념 보완 및 철책 배수로 전수조사 △이번 관할 부대에 대한 국방부·합참·육군본부 공통 임무실태 진단 및 대책 강구 등 후속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경계 실패 관련 사건 때마다 내놓은 대책을 되풀이하는 실효성 없는 재탕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동해안으로 상륙 뒤 5㎞ 이상 남하

북한 주민은 지난 16일 새벽 1시5분께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으로 올라온 것으로 추정됐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모처에서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6시간 정도 남으로 헤엄쳐 이동해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단 귀순으로 추정되며 현재 정확한 귀순 경위와 배경, 동기 등에 대해 합동정보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북한 주민은 해안에 상륙한 뒤 해안철책 전방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다 잠수복과 오리발을 암석지대에 버리고 새벽 1시40분~50분께 해안철책 하단에 나 있는 지름 90㎝의 배수로를 통과해 철책 안쪽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합참은 이때까지 북한 주민의 해변 이동 거리를 대략 400m 남짓으로 추정했다.

이후 북한 주민은 7번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 새벽 4시16분께 민통선 제진검문소 북방 330m 지점에서 민통소초 시시티브이(CCTV)에 포착됐다. 영상감시병이 이를 발견하고 상황 보고를 했다. 북한 주민은 2분 뒤인 새벽 4시18분께 제진검문소 200m까지 접근했다가 7번 국도 동쪽 가드레일을 넘어 해안 방향으로 사라졌다. 당시 보고를 받은 소초 간부는 근무병에게 “가서 누군지 신원을 확인할 것”을 지시했으나, 근무병이 다가갔을 때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사단 등 상급부대 보고는 30여분이 지난 뒤인 4시47분께 이뤄졌다. 이후 고속상황전파체계로 상황 보고가 이뤄지고 사단 경계작전 형태가 격상했으며, 종심차단(깊숙한 침투 차단)과 목진지(주요 길목 진지), 검문소 점령이 시행됐다. 그리고 또 1시간 뒤인 6시35분께 관할 사단은 ‘경계태세 1급’(진돗개 하나)을 발령했고, 또 1시간 뒤인 새벽 7시27분 제진검문소 동북방 100m 지점에서 하반신을 낙엽으로 덮고 누워있던 북한 주민을 붙잡았다.

합참은 이에 대해 브리핑 자료에서 “(해당 부대가) 엄중한 상황에 다소 안일하게 대응했고 상황조치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는 등 제대별로 작전 수행이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합참 관계자는 “애초 소초에서 근무병에게 신원확인하면 되는 간단한 사안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해 상급부대 보고가 늦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사단의 ‘진돗개 하나’ 발령이 늦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초기에 한 사람이 도로를 따라 이동하니까 대공혐의점이 별로 없다고 잘못 판단해 조치가 늦어졌는데 이후 신병확보가 안되니까 작전 지역이 확대될 우려 등을 고려해 뒤늦게 경계태세 1급을 발령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군 부대는 ‘그곳’에 배수로가 있는 줄도 몰랐다

북한 주민이 통과한 해안철책 하단의 배수로는 부대관리 목록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합참 당국자는 “북한 주민이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로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하던 중 부대관리 목록에 없는 3개의 배수로를 확인했다”며 “이 중 2개는 차단막이 잘 갖춰져 있었으나 1개는 철제 차단막이 노후화해 오래전부터 훼손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월남한 북한 주민은 훼손된 배수로로 해안에서 내륙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은 지난해 7월 탈북민의 강화도 ‘배수로 월북’ 사건을 계기로 전 전선에 걸쳐 경계철책 배수로를 모두 점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다시 배수로가 무단 월경의 통로 구실을 한 게 드러나 ”군은 그동안 도대체 뭘 한 것이냐”는 비판이 거셌다. 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은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사건이 발생한) 22사단에 배수로가 48개 있는데, 유일하게 그 배수로만 보강이 안 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이날 “원래 해당 부대 관리목록에 있는 배수로가 45개였고, 이들 배수로는 지난해 모두 보강했는데, 이번에 3개가 새로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배수로 3개가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것은 해안 수색로에서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지형적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 합참의 설명이다. 합참 관계자는 “동해선 철길을 개통하면서 콘크리트 방벽을 쌓았고 그곳에 배수로 3개를 뚫었는데, 해안 경계철책이 콘크리트 방벽에 연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배수로가 보이지 않게 돼 있다”며 “과거 이곳을 담당하는 부대 간 교대가 있었는데 그때 이들 배수로에 대해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철책을 넘어 해안 쪽으로 나가서 들여다보면 배수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철책 바깥 해안 쪽은 미확인 지뢰지대로 간주해 사실상 통행금지 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군사분계선(MDL)과 가까운 지역이어서 북한의 목함지뢰 등이 해류에 떠밀려올 가능성이 많다”며 “이번에도 해안을 조사할 때는 지뢰 탐지기로 안전한지 여부를 확인해가며 이동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철책 안쪽의 배수로 입구 위치는 부대에서도 알고 있는 간부들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합참 관계자는 “이번 조사 때 부대 간부들에 물어보니, ‘배수로 입구를 본 적은 있지만 주변 상가의 오수가 흐르는 통로로만 생각했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길이 26m로 비교적 긴 배수로여서 출구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설명이지만, 철책 주변 시설물에 대해 하나하나 당연히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해상감시장비 “이동물체 확인” 알림창, 감시병 두 차례 묵살

북한 주민은 동해안에 상륙해 해안경계 철책 밑 배수로로 내륙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해상감시장비에 5차례 포착됐다. 이 중 2차례는 소초 감시병 앞 모니터에 알림창이 뜨고 경보음과 경보광이 발신된 것으로 확인됐다.

알림창과 경보 신호는 카메라가 이동 물체를 포착했을 때 자동으로 작동하게 돼 있다. 알림창과 경보가 작동하면 감시병이 상황 간부에게 보고하고 함께 영상을 확인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런 절차는 이행되지 않았다.

마침 알림창이 뜨고 경보가 울릴 때 영상감시병은 광망의 민감도를 조절하는 기준값 설정 작업을 하고 있었고, 이를 감독하는 상황 간부는 업무와 관련한 전화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합참 관계자는 “작업을 마친 뒤에라도 알림창을 확인했어야 하는 데 안했다”며 “감시병은 경험상 강풍 등 자연현상에 의해 경보가 작동한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합참은 해상감시장비가 세 차례 북한 주민을 포착하고도 알림창 등 경보가 울리지 않은 것과 관련해 “경보가 작동하도록 설정된 거리 밖에서 포착한 것이어서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며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합참 관계자는 “세 화면 모두 북한 주민이 멀리 있어서 육안으로도 식별하기 어렵다. 이번에 식별한 것도 전문가들이 녹화된 화면을 여러 차례 되돌려 보면서 겨우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주민은 이날 새벽 4시12분~14분께 7번 도로에서 이동하는 장면이 합동작전지원소 울타리 경계용 시시티브이(CCTV)에 3차례 포착됐다. 그러나 이들 시시티브이는 도로의 이동 상황 파악용이어서 알림창 등 경보를 발령하지는 않았다. 북한 주민은 마지막으로 제진검문소 시시티브이에 2차례 포착됐다. 이 시시티브이도 검문소 이동 상황 파악용이어서 알림창 등 경보가 발령되지 않지만, 위병소 근무병은 이를 알아채고 곧바로 상황 보고를 했다.

■ 점퍼 껴입고 잠수복 차림으로 6시간 수영

이번에 월남한 북한 주민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6시간 정도 겨울바다를 헤엄쳐 이동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합참 관계자는 이 북한 주민에 대해 “북한에서 부업으로 어업에 종사해 물에 익숙한 것으로 안다”며 “수경과 빨대도 당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견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합참에 따르면 당시 기상은 달빛 15%에 가시거리 6㎞였으며, 해류는 북에서 남으로 0.2knot(0.37㎞/h) 속도로 흘렀다. 해수 온도는 6∼8℃로 낮았고, 서풍이 10~13m/s로 강하게 불었다.

당시 북한 주민은 얼굴만 개방된, 손·발까지 덮은 일체형의 잠수복을 입어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패딩 점퍼를 입고 두꺼운 양말을 착용했다. 이런 상태로 수온이 6~8도로 낮았지만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합참 관계자는 “미 해군의 잠수 교본을 봐도 수온 7도 안팎에서도 5시간 이상 수영이나 잠수가 가능하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또 당시 파도가 높았지만, 잠수복 안에 두껍게 입은 패딩 점퍼 등이 부력에 도움이 되고 해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북한 주민이 수영해 오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합참은 추정했다.

북한 주민이 귀순자라면 우리 군의 검문소 쪽으로 와서 신고해야 하는데 오히려 군을 피해다닌 것처럼 보이는 것과 관련해, 합참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남한 군에 붙잡히면 사살당한다고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군 초소에 들어가 귀순하면 ‘나를 북으로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며 “그래서 민가로 가려고 했고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있어 총에 맞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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