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지로 "SNS에 시간 뺏기지 말고, 지식 얻으려면 읽고 써라"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2021. 2. 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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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서면 인터뷰
베이비부머 세대 가장의 삶 통해
남자의 '가슴속 이야기' 끄집어내
"행복한 세대지만 회오도 남아..
요즘 세대는 자의식 과하다 느껴"
"과학의 진보, 이것은 무서운 현실
철학 없는 과학은 파멸로 이어져"
소설 '철도원' '겨울이 지나간 세계'의 작가 아사다 지로./연합뉴스
[서울경제]

일본 도쿄에 사는 예순 다섯 남성 다케와키 마사카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해 취미도 없이 오로지 일만 열심히 하다가 어느덧 정년을 맞았다. 그새 결혼을 했고 자식도 낳았다. 도쿄에 단독 주택도 마련했고, 노후 연금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쌓았다. 하지만 퇴직 송별회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 그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다. 중환자실에 누워 그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65년 만에 끝나 버리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인생의 행복과 불행의 양이 똑같다면 15년이나 20년 정도는 행복한 시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소설 ‘철도원’과 ‘칼에 지다'의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70)가 쉽게 꺼내지 못했던 남자의 가슴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으로 다시 한번 한국 독자들을 찾았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마이니치 신문에 연재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소설 ‘겨울이 지나간 세계(부키 펴냄)’다. 작품 속 주인공 다케와키는 작가와 같은 도쿄 출신의 1951년 12월 생. 전후 고도 성장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아사다는 ‘겨울이 지나간 세계’의 한국 출간을 기념해 서울경제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나와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에겐 ‘나는 군중 속 임의의 한 명’이라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면서 “정말 안락하게 살았고 세상을 향한 이렇다 할 뜻이 없는 세대라 행복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회오(悔悟)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소설 속 다케와키 역시 이런 점에서 행복, 자기 합리화, 후회, 아쉬움, 억울함 등 복잡한 심경 변화를 보여준다.

소설 속 주요 공간으로 지하철을 설정한 것도 그의 세대와 연관이 있다. 아사다는 “(지하철은) 당시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풍경”이라며 “긴자선(우에노-아사쿠사 구간)이 처음 개통 된 게 1927년인데 이는 어머니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도쿄가 대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요 혈맥이 된 긴자선의 등장과 확대가 1951년 생들이 태어나 성장한 시절과 궤를 같이 한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제 관점에서 지금 세대는 참 힘들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자의식이 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개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겉 모습의 개성이 아니라 사상의 결핍이 느껴진다는 뜻”이라며 “풍요가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이긴 하나 인격에 뼈대가 없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SNS를 통해 얻는 건 진짜 행복이 아니라면서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지식과 교양을 얻는 방법은 독서 말고는 없다”며 “귀중한 시간을 계속 SNS에 빼앗기느라 인류가 점점 바보가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사다는 “반면 과학은 한결같이 진보하는 데 이건 무서운 현실”이라며 “철학이 통제할 수 없는 과학은 파멸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읽고 쓰는 노력에 의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교양주의를 사회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며 “그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다. 소설가, 출판사, 번역가, 학자, 언론인, 물론 정치인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최근 여성 작가의 득세에 대해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사다는 “소설은 원래 여성에게 적합한 예술 표현”이라며 “남성은 문학에서 섬세함이 부족하다. 그 불리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스트레스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남성 작가 뿐”이라고 했다. 소설이란 장르가 남성 작가에게 불리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소설은 살아 숨쉬기에 보고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세상 그 자체라고 전했다.

“소설을 생각하면 언제나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야기는 무궁무진합니다. 파도와 빛과 바람의 수(數) 만큼이나 소설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당장의 과제는 30년 가까이 집필 중인 ‘창궁의 묘’라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현재 15권까지 썼습니다. 총 20권으로 완결될 예정입니다.”

▲아사다 지로는···
1951년 도쿄 출생. 어린 시절 집안 몰락으로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1991년 39세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1995년 ‘지하철’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 1997년 ‘철도원’으로 나오키상, 2000년 ‘칼에 지다’로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받았다. ‘철도원’에 실린 단편 ‘러브레터’는 2001년 우리나라에서 ‘파이란’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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