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안받고 지옥행 선택한 파우스트.. 불공정 시대에 '공정'의 통쾌함 느껴"

나윤석 기자 2021. 2. 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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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성녀(왼쪽)와 김세환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파우스트 엔딩’의 연습 장면. 국립극단 제공

■ ‘파우스트 엔딩’ 26일 개막

‘여성 파우스트’김성녀 “우리 모두의 삶 비추는 드라마”

‘미치광이 바그너’김세환 “진정한 인간성 생각해보게 돼”

‘살기 위해 의미를 붙잡았으나/붙잡느라 움켜쥔 것은 무얼까/인간은 노력하며 방황하지만/끝없는 사막 끝에 낙원이 있을까.’

1976년 ‘한네의 승천’으로 무대에 처음 선 후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은 ‘마당놀이의 여왕’ 김성녀(71)는 연극 ‘파우스트 엔딩’의 대본을 덮고 이 대사 한 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파우스트가 죄를 짊어지고 ‘지옥행’을 선택한 뒤 읊조리는 묵시록이다. 원작인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1831)에서 파우스트가 간척사업으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킨 잘못에도 신의 구원을 받은 결말과는 완전히 다른 에필로그다.

김성녀는 “원작 파괴가 아니라 창조적 재해석을 통해 21세기에도 유효한 ‘파우스트’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우스트 엔딩’은 국립극단이 지난해 4월 창단 70주년 기념 레퍼토리로 선보이려던 작품이었으나 감염병 확산과 김성녀의 어깨 부상이 겹쳐 공연이 무산됐다. 우여곡절 끝에 26일 개막이 확정되며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파우스트의 수제자이자 욕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미치광이 학자 바그너는 ‘불꽃놀이’ 등에 출연한 국립극단 시즌 단원 김세환(33)이 맡았다. 두 사람을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원작을 ‘카피’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출연이 내키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괴테의 작품과 결별한 결말을 읽고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조광화 연출이 지은 ‘파우스트 엔딩’이란 제목엔 원작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습니다. 힘 있는 특권층은 큰 죄를 저질러도 쉽게 용서받는데 평범한 서민은 작은 잘못에도 가혹한 벌을 받는 모습을 흔히 보잖아요. 파우스트가 구원을 마다하고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불공정이 판치는 시대에 공정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파우스트의 비극적 결말에서 통쾌함을 느꼈다는 김성녀는 자신의 모습을 인물에 대입하니 한편으론 ‘연민’도 솟아났다고 했다. 그는 “‘노력하며 방황하지만…’이란 대사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어려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읽었다”며 “몹쓸 짓을 저지른 악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삶을 거울처럼 비추는 드라마인 셈”이라고 했다.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김세환은 ‘파우스트 엔딩’이 감염병 시대에도 곱씹을 만한 통찰을 전한다고 말했다. “완전한 생명체를 만들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바그너는 ‘반성’과 ‘성찰’이 없는 인물입니다. 자식마저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삼는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오늘 우리가 마주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위기’도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됐잖아요. ‘파우스트 엔딩’의 세계관은 마치 오늘을 예견한 듯 잠시 질주를 멈추고 진정한 인간성의 가치를 생각해보자고 말합니다.”

이에 김성녀는 “파우스트나 바그너나 모두 비극적으로 생(生)을 끝내니 고통스러운 작품인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가슴 아픈 소식이 쏟아지는 시대에 ‘고통’의 근원을 직시하는 것은 순수 예술이 감내해야 할 책무”라고 말을 받았다.

김성녀는 여성이 파우스트를 연기한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고전이지만 분량이 방대하고 내용도 어려운 탓에 완독한 사람은 드물죠. 캐릭터 성별이 여성으로 바뀌면서 작품 전체가 부드러워졌어요.”

어느덧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그는 힘이 닿는 데까지 무대를 지키며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스크린 속 ‘천만 배우’를 볼 땐 가끔 기가 죽기도 해요. 그때마다 ‘인기란 뜬구름 같은 것’이라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아요. 비록 작고 연약한 예술이지만, 연극만큼 정신적인 만족을 안겨주는 장르도 흔치 않아요. 언제까지나 무대 위에서만 빛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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