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두통에 한알 두알.. 믿었던 진통제가 발등 찍네
7년 전 아랍의 고위 공직자 소개로 한 남성의 목 통증을 치료한 적이 있다. 수십년 간 이어진 두통과 목의 통증으로 고통받아온 분이었다.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가봤다고도 했다. 내가 처음 그에게 내린 처방은 복용하던 진통제를 끊으라는 것이었다. 항우울증제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와 함께 후두부의 신경주위에 적절한 자극을 가했다. 아주 간단한 조치와 약 조절만으로도 통증이 줄었다.
이분은 경추(목) 신경이 지나가는 부위가 좁아지는 ‘경추협착증’을 앓고 있었다. 이 때문에 팔저림과 목의 통증이 같이 발생했다. 이후 살인적인 두통뿐 아니라 목 통증과 팔 저림도 사라졌다. 현재는 모든 약을 끊고 잘 지내고 있다.
2019년 작고한 스위스의 신경과 의사 아이슬러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바로 진통제가 만성 두통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는 1978~1981년 사이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만성 두통이 생긴 것으로 의심되는 23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진통제만 끊게 했을 뿐인데 두통의 빈도와 강도가 현저하게 호전됐다. 약을 끊은 것만으로도 좋아진 환자 중 일부는 치과 치료 등으로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다시 통증이 증가하거나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지는 현상도 관찰됐다. 이 같은 현상을 ‘약물 남용 두통’ (Medication Overuse Headache)이라고 부른다.
약물 남용 두통의 유병률은 생각보다 높다. 인구의 1~2%가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왕과 라이는(Dr. Wong and Rai) 이 같은 증상의 원인으로 신경의 가소성(신경 회로가 변하는 것)을 지목했다. 이는 이미 밝혀진 약물 중독의 메커니즘과도 비슷하다. 왕과 라이는 자기공명영상(MRI)를 통해 통증 조절에 관여하는 뇌 영역의 변화를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치료 후 나타나는 변화가 관찰됐다.
통증을 조절하는 신경계시스템은 항상 적절한 자극에 의해 반응한다. 하지만 자극이 가려지면서 오히려 신경 시스템이 과민하게 되는 현상(disuse hypersensitivity)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정상적인 통증 자극이 오면 이 과민성은 사라지고 자연스레 통증은 개선된다. 편두통이나 긴장성 두통 등 여러 두통은 신경회로 변화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정상적인 통증 회로를 은폐시키거나 움직임을 제한함으로써 신경회로의 정상적인 작동이 지장을 받게 되면 신경회로의 기능은 떨어진다. 신경회로의 기능이 떨어지면 신경회로는 통증 부위를 더 긴장시키고 더 아프게 느끼도록 변화한다. 이때 신경회로에 대한 적절한 자극만으로도 충분히 병을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
두통뿐 아니라 다른 만성통증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신경회로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앞머리 통증이 있다고 앞머리의 병이 아니고 뒤통수의 병이 있다고 뒤통수의 병이 아니다. 신경회로의 이상을 잘 진단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자극을 가해 회로를 변화시키면 충분히 상태가 좋아질 수 있다.
만성통증은 인생의 그림자와 같다. 이 그림자는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나이 먹으면서 피할 수 없이 나타나곤 한다. 초기에 적절히 대응하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 통증이 나타나면 우선 가까운 의사를 찾아 다른 심각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통증이 지속한다면 전문가를 찾아 치료받는 게 좋다. 나이가 들면서 만성통증은 감기처럼 흔한 병이 되지만 이를 은폐하거나 내버려두는 것은 신경회로를 더 망가뜨려 나쁜 결과만 몰고 온다. 통증 범위가 늘어날 뿐 아니라 강도도 더 심해진다. 우울증, 불안증, 이명, 소화장애, 수면장애, 탈모 등 다양한 증상도 동반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통증 줄이는 ‘안강국민운동’… 유튜브 ‘의대녀’에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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