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별들의 무덤' 22사단 경계문제를 어찌할꼬?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입력 2021. 2. 23. 07:28 수정 2021. 2. 2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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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이 지난 17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2사단 귀순자 상황 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제가 70~80년대 학교 다닐 때 군과 관련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물샐 틈 없는, 철통 같은 경계태세’라는 말이었습니다. 방송에 나온 최전방 부대 장병들은 예외 없이 소리 높여 이 말을 되풀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물 한 방울, 개미 한마리 새어 들어올 수 없는 경계태세란 불가능한 얘기지요.

90년대 이후 언제부터인가 방송에서 군인들의 이 같은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군 경계태세 허점이 드러날 때마다 이런 말이 자승자박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군내 평가도 이같은 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최근 이른바 ‘헤엄 귀순’ 사건으로 22사단이 3개월여만에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22사단 실태를 좀 살펴보지요. 22사단은 ‘별들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바람 잘 날이 없었던 부대입니다. 지난 10여년간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사단장이 그렇지 않은 사단장보다 많다고 할 정도지요.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지난 2005년 황만호 월북 사건으로 사단장이 문책을 당했고, 2009년엔 민간인이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엔 그 유명한 ‘노크 귀순’사건이 있었고, 2014년엔 임 모 병장 총기 난사 사건으로 사단장과 참모들이 줄줄이 보직 해임됐지요. 지난해 11월엔 이 지역에서 북 민간인이 철책을 뛰어 넘어 귀순하기도 했습니다.경계가 뚫릴 때마다 문책과 대책 발표가 있었지만 개선이 되지 않자 22사단에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서욱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 17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22사단 귀순 사건과 관련해 박정환 합동참모본부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은 모종화 병무청장. /조선일보 DB

실제로 22사단은 전군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감시소초(GP)와 일반전초(GOP) 등 전방경계와 해안경계를 동시에 맡고 있는 사단입니다. 책임구역을 보면 전방 육상 30㎞, 해안 70㎞ 등 총 100㎞에 달합니다. 다른 최전방GOP 사단의 책임구역이 25∼4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너무 넓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경계 임무를 맡는 2개 연대와 1개 예비연대로 구성된 다른 GOP 사단과 달리 22사단은 예비연대 없이 3개 연대를 모두 육상과 해안 경계에 투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쉴새 없이 병력을 사실상 풀가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구나 국방개혁 2.0에 따라 인근 삼척 지역의 23사단이 올해 해체되면 22사단의 책임구역은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현재 23사단도 길이 100km 이상의 긴 동해안 해안경계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더구나 군사분계선(MDL)과 맞닿은 철책 지역은 한국군 최전방 지역 중에서도 가장 험준하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이 때문에 열상감시장비(TOD) 등 감시장비 운용이나 작전병력 투입에 애로사항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22사단에 추가병력 지원 등 다른 배려는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DMZ(비무장지대) 최전방 철책선 부대에서 운용되고 있는 과학화경계시스템 통제실. 각종 카메라와 감지센서 등으로부터 수집된 정보가 종합된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에서도 일부 여야 의원들이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국방위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다른 사단에 비해 책임 반경이 4배나 더 많다”며 “인원이나 장비 여건이 똑같은데, (경계) 구멍이 뚫린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나”고 말했습니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저도 22사단에서 복무를 했는데 당시 내가 경계하는 경계선이 뚫리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허벅지를 꼬집으며 근무 섰던 경험이 있다”며 “이번 기회에 22사단에 대해 근본적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단지 구조적인 문제로 동정표만 던지기는 어려운 대목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북한 남성이 지난 16일 새벽 해안으로 올라온 이후 해안 철책 하단의 배수로로 통과하기 전까지 해안 경계 근거리감시카메라(CCTV) 등 카메라에 총 8차례 포착됐다고 하는데 당시 해당 부대는 아무런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군 과학화경계시스템 장비는 CCTV에 움직이는 물체가 포착되면 소초(소대본부) 상황실 컴퓨터에서 알람(경고음)이 울리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알람이 울리면 소초에서 바로 상부에 보고하고, 5분 대기조를 출동시켜야 하는데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2016년부터 5년간 최전방 과학화경계 시스템고장 실태. 오작동, 카메라 고장 등 기술적인 문제들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해소되지는 않고 있다. /조선일보 DB

이에 따라 북한 남성은 해당 부대에 처음으로 포착된 새벽 1시 조금 넘은 시점부터 3시간 동안 최초 상륙 추정 지점에서 5㎞ 이상 떨어진 민통선 검문소 인근까지 7번 도로를 따라 아무런 제지 없이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일각에선 상황실 장병들이 알람을 끄거나 소리를 줄여놔 못들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예민해 강한 바람이나 동물 접촉 등에 의해 너무 자주 알람이 울리다보니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 당국 조사 결과 상황실 장병이 2차례나 경고음이 올렸음에도 바람 등에 의한 오작동으로 오판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군 당국도 이에 대해선 명백한 과오라고 인정했습니다.

북한 남성이 해안 철책 하단의 배수로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었는데 해당 부대의 배수로 관리에 허점이 있었음이 확인됐습니다. 군은 작년 7월 인천 강화도에서 20대 탈북민이 배수로로 월북한 사건 이후 모든 해안과 강안 철책의 배수로를 점검해 보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해당 부대는 지난해 배수로 일제 점검 및 보완조치 지시에도 불구하고 시설물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겨울 강추위 속에서도 최전방 초소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강원도 철원 육군 6사단 청성부대 장병들. 잇딴 22사단 귀순 사건을 계기로 군 경계시스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에 대한 재점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선일보 DB

이번 사건은 군이 인구절벽 병력감축에 대응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과학화경계시스템의 한계도 재확인해줬습니다. 아무리 첨단장비가 발전하더라도 사람이 방심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22사단장을 지낸 한 예비역 고위장성은 “22사단 지역은 워낙 취약한 곳이 많아 사단장부터 초급간부까지 항상 일정수준 이상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대적관 등 군 정신자세를 약화시키는 정치 및 사회 분위기속에서 장병들이 다소 이완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방부와 합참은22사단을 비롯, 군 경계태세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 대해 심각하게 재점검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군은 국가가 가장 덜 준비돼 있을 때 가장 잘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격언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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