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부가티' 팔아 스타트업 지분 인수.. 폭스바겐의 전기차 시대 생존법
독일 폭스바겐그룹이 자사의 슈퍼카 브랜드 부가티를 크로아티아 고성능 전기차 업체 리막오토모빌리(리막·Rimac Automobili)에 매각할 전망이다. 대신 폭스바겐은 리막 지분 15.5%를 보유하게 된다. 일종의 스와프(맞교환) 거래인데, 이를 두고 전기차로의 전환기에 슈퍼카 업계의 생존게임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폭스바겐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 부가티를 설립 10년 남짓한 스타트업의 지분과 맞바꾼 것은 ‘전동화(化)’ 전환의 상징적인 거래라는 것이다.
폭스바겐그룹의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독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가티가 최선의 방법으로 개발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리막과 부가티가 기술적으로 적합해 거래가 곧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리막은 크로아티아 베른응용과학대에 재학 중이던 발명가 마테 리막이 스물한 살이던 2009년에 세운 전기차 회사다. 슈퍼카 이상의 성능을 내는 하이퍼카 전기차만 생산하는데, 지난 2011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2인승 스포츠카 ‘콘셉트원’을 공개해 주목받았다. 콘셉트원을 바탕으로 개발된 양산 모델은 지난 2016년 400m 직선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경주인 드래그 레이싱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 출시 예정인 ‘콘셉트투’는 최고 출력 1888마력의 모터를 탑재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1.8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최고 속력은 412㎞에 판매 가격은 200만유로(약 27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리막은 폭스바겐그룹 소속 포르쉐뿐 아니라 현대차그룹, 중국 배터리 업체 카멜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카멜이 2014년 리막 지분 14.0%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포르쉐가 10.0%를 인수했다. 이후 카멜과 포르쉐는 지분을 각각 18.1%, 15.1%로 확대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기아차(000270))는 지난 2019년 5월 리막에 총 8000만유로(1100억원)을 투자해 각각 11.0%, 2.7% 지분을 갖게 됐다. 현대차·기아는 당시 리막의 기술을 활용해 고성능 수소전기차 분야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기차 전환 바람에 글로벌 슈퍼카 업체들은 슈퍼카의 심장이자 상징이나 다름없는 내연기관 엔진을 버려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슈퍼카 존재의 이유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리막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내연기관 특유의 주행감 대신 다른 방법으로 슈퍼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덕분이다.
대표적인 것이 리막이 공개한 운전자 훈련 프로그램이다. 리막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활용해 서킷 주행을 즐기는 슈퍼카 운전자가 더 빨리 달리는 방법, 주행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점을 알려준다.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주행 기술을 높인 운전자는 슈퍼카의 잠재력을 최대한 즐길 수 있게 된다.
가볍고 날렵한 주행 성능을 내야 하는 슈퍼카에 적합한 배터리·전력 기술을 확보한 것도 리막의 경쟁력이다.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해야 하는 전기차의 특성상 무거운 배터리는 슈퍼카의 주행 성능을 저하시킬 수 있는데 리막은 이를 개선할 수 있는 파워트레인과 배터리팩뿐 아니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특히 리막의 핵심 비즈니스는 직접 완성차를 생산하기보다 전기 슈퍼카 플랫폼을 판매하는 데 있다. 엔지니어링 회사로써 시제품을 만들어 여기에 들어가는 파워트레인이나 배터리 등 전기차 관련 기술과 부품을 다른 완성차 업체에 판매한다는 전략인데, 포르쉐뿐 아니라 애스턴마틴, 코닉세그, 레제라, 등에 핵심 기술을 제공해 상당한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이 부가티 매각을 통해 리막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면 리막에 대한 폭스바겐그룹의 지배력은 더 확대된다. 폭스바겐은 포르쉐 지분 100%를 갖고 있어, 이번에 폭스바겐이 리막 지분 15%를 확보하면 폭스바겐그룹의 리막 지분율은 30% 수준이 된다. 리막이 폭스바겐그룹 산하 업체가 되면 장기적으로 폭스바겐은 그룹 내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 다른 슈퍼카 브랜드의 전동화 전환 과정에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고성능을 내야 하는 슈퍼카의 특성상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막대한 투자비가 들지만, 고가 모델은 소비 시장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렵다"며 "일반 완성차 브랜드보다 전기차 전환 과정이 훨씬 어렵지만, 리막과 같은 전문 업체와 협력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전환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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