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42도, 쌀은 품절이다..45세가 된 준혁씨의 2050년 [흑백 민주주의 ⑦]

조문희 기자 2021. 2. 23. 06: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농산물 수출입 제한…쌀 자급률 47%
온난화로 벼 생산량 줄어 ‘귀한 몸’ 돼
영주 사과는 옛말, 식탁 위엔 파파야가
집중호우 잦지만 씻고 마실 물은 부족
수몰돼 사라진 방콕·호찌민, 남일 아냐

뉴욕 매거진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월리스웰스는 2050년 세계 약 50억명이 물부족 위기에 직면한다는 등 내용을 담아 <2050 거주불능 지구>를 썼다. 2050년이면 먼 미래가 아니다. 현재 10대는 40대가, 10세 미만은 30대가 되는 시점이다. 그때 한반도 상황은 어떨까. 최근까지 기후위기에 대한 국내외 연구를 종합해 2021년 10대인 가상의 인물 이준혁씨가 2050년 맞는 미래를 그려봤다.

비싼 감자 대신 카사바로

진공쌀통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오늘 저녁밥을 짓고 나면 바닥이 보일 모양이다. 인터넷 쇼핑몰에는 ‘쌀 품절’ 글자가 뜬 지 오래다. ‘마트에 가면 재고가 있으려나.’ 준혁씨는 혼자 고개를 저었다. 흰쌀은 귀한 식품이다. 가격도 비싸지만, 구하기도 어렵다. 과거 100%에 가까웠다던 쌀 자급률은 지금 47.3%에 불과하다. 외국에서 사오면 될 줄 알았는데, 외국도 온난화로 벼 생산량이 줄었다. 밀·옥수수 등 전반적인 곡물 수급도 좋지 않다. 세계 인구는 97억명으로 늘었다. 농산물은 ‘식량안보’를 앞세우며 수출입을 제한하는 상품이 됐다.

준혁씨는 부엌 뒤편 베란다 창고 종이포대에서 카사바를 꺼냈다. 한때는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대륙 국가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권 지역에서 주로 먹던 식품이다. 처음 카사바를 먹던 날 어머니는 “감자랑 비슷하다”고 묘사했지만, 감자가 외려 준혁씨에겐 익숙지 않은 구황작물이었다. 어릴 적엔 이따금 먹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값비싼 특산물이다.

2050년, 한국은 ‘더운 나라’다. 국토의 상당 지역이 아열대성 기후를 보인다. 사과·복숭아·포도가 생산되는 지역도 크게 줄었다. ‘영주 사과’는 옛말이 됐다. 얼마 뒤면 한국엔 ‘백두대간 사과’만 남는다고 한다. 식탁 위에 놓인 망고, 파파야가 한국을 대표하는 과일이 됐다.

먹거리만 바뀐 게 아니다. “서울 낮 최고기온 42도, 대구 40도…. 폭염 피해가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셔야 하겠습니다.” 일기예보에선 걸핏하면 주의·경보 안내가 나왔다. 어릴 땐 ‘폭염’이라 부를 만큼 더운 날이 한 해 열흘 남짓이었는데, 지금은 해마다 50여일에 달한다. 날씨 때문에 죽거나 아픈 사람이 많아졌다. 한 해 약 250명이 폭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더위의 간접적 영향까지 고려하면 준혁씨가 사는 서울에서만 10만명당 230명이 죽는다. 뎅기열·지카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흰줄숲모기가 국내에 자리 잡은 것도 위협 요소다.

언제 ‘스콜’이 쏟아질지 몰라 우산을 꼭 챙긴다. 폭염엔 강수일수가 줄어든다는데, 비가 내리면 집중호우인 때가 많다. 홍수도 빈번해졌다. 100년에 한 번 범람하도록 설계됐다는 하천제방에서 요즘엔 4년에 한 번꼴로 물이 넘친다. 영산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유역은 늘 정부·언론이 지켜보는 하천 범람 위험지역이다.

바다와 맞닿은 지역도 고충이 크다. 제주도 해수면은 이미 20㎝가량 상승했다. 2100년이면 80㎝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한국에선 군산·목포, 북한에선 남포·신의주 등 서울 면적의 4배가 넘는 땅이 물에 잠길 거란다. 물이 이렇게 많은데 정작 마시고 씻는 데 쓸 물은 없다. 정부는 38억8600만t 규모의 물부족 사태가 나타났다고 발표한다.

한국의 스키장엔 더 이상 눈이 없다

기후변화는 준혁씨의 휴가도 바꿔놨다. 일단 해수욕을 해본 지 오래다. 난류 영향으로 독성 해파리가 늘어 위험하다는 뉴스가 여러 차례 나왔다. 해운대 등 침수위기인 지역이 많다.

겨울에 스키를 타려면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 동계올림픽 개최지역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겨우내 눈이 쌓인 스키장은 한국에서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이따금 찾던 방콕(태국), 호찌민(베트남)은 수몰돼 지도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여행지는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었다. 전쟁 때문이 아니라 날씨 때문에 난민 약 12억명이 세계 이곳저곳을 떠돈다. 준혁씨는 어릴 적 난민 수백명이 입국해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걸 기억한다. 기후난민과의 공존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숙제가 됐다.

뉴스에선 앞으로는 더 더워질 거란 예측을 내놓는다. 2100년이면 경상도, 전라도 대부분 지역과 강원도 해안 지역을 포함해 국토 약 52%가 아열대기후로 변한다고 한다. 일년 중 절반이 최고기온 25도를 넘는 여름 날씨가 된다고 한다. 이미 제주도와 울릉도엔 겨울이 없다. 소나무 숲은 함경도와 강원도 산지 일부에만 남고, 진해 벚꽃축제는 아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낭만적인 걱정이다.’ 준혁씨는 주절거리며 마트 갈 준비를 한다. 마스크를 쓰는 그의 머릿속에, “날씨가 좋으면 미세먼지, 날씨가 나쁘면 비나 추위나 더위가 사람을 괴롭힌다”는 기상예보관의 말이 스친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