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회복..韓 "美 도움받을 수도"vs日 "결국 양국 문제"

정다슬 2021. 2. 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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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3각 공조' 중시하는 美바이든 정부
韓, 한일관계 개선 적극적인 제스처 日 무시전략 지속
"美, 한일 역사문제 끼어들진 않을 것"
(왼쪽부터)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바이든 정부는 북한 문제에서 한미일 연계를 중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은 있지만, 한일간 현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일 당사자국들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도미타 고지 주미 일본 대사는 1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한미일 관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주한 일본 대사로서 근무했다.

도미타 대사의 발언은 한미일 3각 공조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이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한일 간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견해를 담고 있다.

이는 최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발언과는 결을 달리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정 장관은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주일 대사 만남 거부하는 日스가 총리

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우리나라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일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실제 일본의 대(對)한국 냉대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남관표 전 주일 한국 대사의 이임 접견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통상 일본은 주일 한국 대사가 부임하거나 이임하면 총리와 접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왔다. 그만큼 한국을 중요한 국가로 예우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지난 1월 스가 총리는 남 전 대사의 이임 접견을 거부했다. 같은 기간 이뤄진 도미타 전 주한 일본 대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후 떠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 대사에 대해서도 스가 총리가 만남을 거부할 것이란 일본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징용·위안부 배상 판결 문제 등에 대한 해법 없이는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남 전 대사가 2019년 5월 당시 부임했을 때도 한일 관계가 최악이었지만 고노 다로 외무상과는 부임 4일째, 아베 신조 전 총리와는 부임 12일 만에 면담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 강 대사는 스가 총리는커녕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도 면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2일 면담에 응한 것은 일본 외무성의 ‘2인자’인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이었다. 그마저도 10분 만에 그쳤다.

정 장관이 취임 보름이 다 가도록 모테기 외무상과 통화하지 못한 것 역시 이례적이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2017년 6월 19일 취임한 후 이틀 뒤인 21일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외무상과 통화를 나눴다. 해외 정상과 나눈 첫 통화였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도 그 다음 날인 22일 전화했다.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역시 2013년 3월 11일 취임하고 14일 기시다 전 외무상, 16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통화했다.

1년 반만 외교당국 3각 협의 열렸지만…

일본은 한미일 공조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적극 협력하겠지만 한일 관계는 결국 한국 측이 “국제법 위반” 상황을 시정하지 않으면 개선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19일 약 1시간 10분간 북핵·북한 문제에 관련해 화상으로 협의했다. 한미일 외교 당국자 간 협의는 약 1년 반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바이든 정부가 들어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한미일이 의기투합해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한일 관계 개선의 신호탄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에 대한 한미일 공조는 일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작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실제 일본은 미국의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당시에는 북미 간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비용은 물론 북한 비핵화에 드는 비용을 일본이 부담할 뜻이 있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안보 대북 현안인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대북 정책의 공조 틀에서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한일 관계는 다르다. 일본은 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과 정부에 대한 배상 책임을 명한 한국 법원의 판결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기본조약과 국가 면제 원칙을 위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북한에 대한 한미일 공조와는 별도로 한국이 답을 내놓을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스가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요구에 이같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일 밀착 행보…美, 한일 역사문제 끼어들 가능성 적어

일본은 미국과의 밀착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모양새다. 미국 역시 중국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것을 견제하는 것과는 별도로 당장 코로나19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 새겨진 미국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의 존재가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과거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던 보호국에서 벗어나 안전보장·외교 측면에서 미국과 함께 움직이는 파트너 국가로 위상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자 사설에서 주일 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1년 연장한 것을 지적하며 “(미국이) 앞으로는 분담금 액수보다는 안전보장이나 외교의 체제 만들기에서 일본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일 과거사 갈등에서 무조건 우리나라의 편을 들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도 미국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에 의한 성적인 목적의 여성 인신매매”라며 “지독한 인권 침해”라고 보고 있지만, 한일 과거사 해결 문제에 대해서는 두 국가 사이의 일이라며 개입을 피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안보실 제1차장과 외교부 1차관을 지냈던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갈등을 해결하려는 미국 측의 압력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의 계기가 됐다면서도 미국이 협상 과정과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 측은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민·관 합동으로 재검토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 역시 미국을 움직여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술에 대해 현실성을 지적한 바 있다.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을 통해 일본을 설득한다는 전략을 이끌었다”며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 안에 ‘역사 피로’ 현상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소마 히로히사(왼쪽)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 강행과 관련해 초치되어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 들어서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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