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추상적이고 먼 목표에만 합의..가까운 실천에는 왜 머뭇대죠? [흑백 민주주의 ⑦]

조문희 기자 2021. 2.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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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 '우리가 나서는 이유'

[경향신문]

청소년기후행동 김서경, 윤현정, 김보림 활동가(왼쪽부터)가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기후위기는 우리 일상이 무너지는 일”
목소리 내면 인식·정책 바뀔 거라 생각
현실은 투표권 없어 국회에 압박 안 돼
“온실가스 감축 방기한 정부 책임져야”

“기후위기는 내가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무너지는 일이에요. 당장 이번 여름에 엄마나 할머니가 폭염에 쓰러질 수도 있는데 손놓고 기다릴 순 없지 않나요.”

지난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 청소년기후행동(청기행)의 활동가 윤현정(17), 김서경(20), 김보림(28)씨가 모였다. 하루 반짝 모임이 아니다. 청기행 상근활동가인 이들은 하루 8시간, 주 5일 오피스텔에 나와 직장인처럼 일한다. 모든 시간을 자료 조사, 홍보, 올해 활동 계획 등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쓴다. 방으로 들어서는 문엔 “기후위기 대응하자 청소년기후행동” 글자를 골판지에 적어 붙였다.

2018년 단체를 결성할 때만 해도 이 정도 열심은 아니었다. 김보림 활동가는 사람들의 인식과 정부 정책이 빠르게 바뀔 거라 생각했다. “기후변화의 현실은 자명하고 과학적 근거도 많아서 알리기만 하면 변화가 일어날 줄 알았어요.” 2019년 결석시위를 벌이며 ‘환경교육 강화’를 외쳤지만 현실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 ‘환경교사 두 명 늘려줄게. 됐지?’ ‘환경교육 해줄게. 시위 멈춰라’라는 반응을 받았어요. 교육이 인식을 바꾸는 징검다리가 되면 정책 변화로도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교육만 바꾸겠다’는 대응이 나왔던 거죠.”

청기행은 교육을 넘어 정부 정책의 변화를 요구한다. 보통 ‘고2’로 짐작할 나이, 윤 활동가는 지난해 학교를 그만두고 오래 살던 울산을 떠나 서울에 올라왔다. 중학교 재학 시절 채식에 관심을 가졌다가 기후 대책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시작했다. “어른들은 ‘대학부터 간 다음 목소리 내라’고 해요.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한다면 6년 안에 탄소예산을 다 쓰게 돼요. 그때 전 대학도 졸업 못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온갖 피해를 겪긴 싫어요.”

기후위기 대응에 무능한 정치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보다 기후위기에 민감하다. 지난해 유엔개발계획(UNDP)이 옥스퍼드대학과 함께 전 세계 시민 120만여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기후변화를 위기로 인식하는 정도는 세대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18세 미만 청소년은 69%가 기후 비상사태라고 인식한 반면 60세 이상 인구에서는 58%였다. 하지만 제도권 정치는 청소년의 목소리에 민감하지 않다. 투표권이 없어 국회에 즉각적인 압박을 주지 못하는 것이 한 이유다. 지난해 9월 청기행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장과 정당 지도부, 환경노동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 소속 등 의원 15명에게 적극적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한 달여 기한 내 응답한 사람은 장혜영 정의당 의원 한 명에 그쳤다. “(다른 의원들은) 국감이 지나고 나니까 그제야 ‘사진 찍자’고 연락이 왔어요. 청소년은 의원들 안중에 없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집회·시위에 나서 목소리를 내도 ‘되바라졌다’ ‘선동당했다’ ‘애들이 뭘 아느냐’는 등 편견 어린 시선을 마주한다. 김서경 활동가는 2019년 결석시위에 나서는 과정에서 ‘시위 활동을 용인할 수 없다.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학교 측 압력을 받았다. 뉴욕주처럼 결석계 제출을 승인하거나 체험학습으로 인정하는 학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윤 활동가는 지난해 10월 산자위·기재위 국감장에 참고인 신분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의원들이 반대해 무산됐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잖아요. 그런 곳에 청소년은 못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사회가 어떻게 청소년을 보고 있는지 드러낸 것 같아요.”

청소년 활동가 눈에 어른들의 기후위기 대응은 지지부진하다. 국회 비상결의 이후인 지난해 9월21일 환노위 환경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결의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2050년 순 탄소배출량을 0으로 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중간 목표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여당 의원들과 환경부 차관은 ‘구체적인 수치를 결의안에 담는 건 어렵다’고 했다. 추상적이고 먼 목표엔 합의하지만 가까운 실천엔 머뭇거리는 모양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온실가스국장은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산업정책의 하위 정책으로 다뤄져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부·국회가 현행 발전 패러다임에 입각해 환경정책을 후순위로 미뤄둔다는 뜻이다. 발전기업뿐 아니라 싼값에 전기를 공급받는 기업도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에너지정책에 민감하다. 시민들도 발전 방식이 바뀌면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 아닌지 우려한다. 그 결과 환경부가 내놓은 기후정책을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대하는 엇박자가 나타난다는 게 이 국장 분석이다.

기후위기 대응 기구로서의 사법부

지난해 3월 청기행 소속 청소년 19명은 “정부의 소극적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청소년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국회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 심판은 일종의 우회로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주요한 의사결정 방식의 하나지만, 다수가 소수자의 평등·자유·인권 등 민주적 가치를 침해할 때는 사법부가 헌법상 권리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호명되곤 한다.

기후위기와 관련해 사법부의 개입을 요청한 사례는 외국에도 있다. 변호인단은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서 2019년 12월 네덜란드 대법원의 ‘위르헨다 소송’ 확정판결을 거론했다. 환경단체 위르헨다가 2013년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대응을 소홀히 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시작한 해당 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정부는 2020년까지 2009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 이상을 감축하는 목표를 세우고 집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3일엔 프랑스 정부가 파리기후협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파리행정법원의 결론이 났다.

한국의 전망은 밝지 않다. 정부를 대리한 정부법무공단이 지난해 10월 청기행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에 대해 제출한 의견서는 현행법이 청소년의 환경권, 생명권,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청기행 측 변호인단은 지난달 “대통령이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집행하지 않고 방기한 조치는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명백히 위반”했다며 보충의견서를 제출한 상태다.

시간은 청소년의 편이 아니다. 헌재 판단이 나올 때까지도 기후위기는 심화된다. 소송이 끝난다 해도 정책과제를 설정하고 법령을 바꿀 정부·국회의 역할은 남는다. 활동가들이 ‘대학 가서’ ‘나중에’란 말에 지치고 미지근한 정부 대응에 실망감을 표하면서도 논의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다. “3월19일 글로벌기후행동의날을 앞두고 있어요. 4월엔 ‘기후위기는 인권위기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캠페인 활동을 하려고 해요. 당위적인 이야기라도 계속하려고 해요. 우리의 생명과 미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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