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나는 '죽음학 교수'

최연진 기자 2021. 2. 2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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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 '죽음'을 주제로 유튜브 시작

“죽는 순간만 죽음이 아니에요. 죽음을 준비하고, 실제로 그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죽음이라고 봐야 해요. 그때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는 게 ‘좋은 죽음’이 아닐까요.”

최근 서울 서촌의 한 한옥에서 유은실(64)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를 만났다. 한 시간 내내 ‘죽는 얘기’만 했다. “저도 처음엔 당연히 ‘무섭다’는 생각부터 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 툭 터놓고, 어릴 때부터 죽음을 얘기해야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요.” 작년 8월 의료 일선에서 물러난 그가 죽음을 주제로 유튜브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서울 서촌의 한옥‘북성재’에서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가 문가에 기댄 채 웃고 있다. 유 교수는“꼭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청소년기부터‘좋은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 있는 의사이면서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것은 얼마 안 돼요. 그만큼 우리는 준비가 안 돼 있을 거예요.” 30년 넘게 의료 현장에 있으면서 인간의 ‘시작’과 ‘끝’에 대해 고민했다. 병리학 전공이지만, 대학 등에서 ‘유언장 써보기’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해 강연하면서 ‘죽음학 교수님’으로 소문이 났다. 그런데도 아직 죽음이 막연하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유튜브 채널 ‘우아한 노년’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로 했다. 내달부터 유 교수가 직접 강연도 하고, 죽음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궁금증을 모아 함께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경기여고 시절 ‘공부 잘하는 금실이 은실이’로 이름을 떨쳤다. 3학년 1등 ‘금실이’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2학년 1등 ‘은실이’가 유 교수다. 동시대에 학교를 다닌 김영란 전 대법관이 유 교수가 최근 번역한 책 ‘삶을 선택할 것인가,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에 추천평을 썼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겠는가.”

유 교수가 생각하는 죽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인생의 여러 단계에 막이 있듯, 죽음도 한 막을 마무리하며 ‘커튼’을 치는 것이 아닐까요.” 코로나로 인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 경우가 숱한 요즘이다. 그는 “안타깝지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며 “그래서 모두가 매일 아침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귀한 하루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제 남편도 제가 처음 죽음 얘기를 꺼냈을 땐 ‘이상한 여자네’라고 생각하는 눈치였어요. 그래도 자꾸 얘기하다 보니 죽음을 우울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정년을 2년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나는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왜 무기력하게 정년만 기다려야 하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유튜브 운영은 아직 생소하다. 아마추어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한 강연을 들으며 휴대폰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영상 편집법, 구독자 타게팅 방법을 힘겹게 배웠다. 그는 “많은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행복한 노년,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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