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맞은 김 교수님, 유튜버 데뷔하셨다네요
“훈(勳)자는 등불 밑에 또 불, 그 옆에 힘 력 자가 있는 모습인데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아(兒)자는 어린아이, 즉 동심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나훈아씨는 이름에 맞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유튜브 ‘한잘알’ 채널에서 가수 나훈아의 이름 풀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 2018년 고려대 한문학과에서 정년 퇴임한 김언종 명예교수다. 그는 정년 이후 직접 유튜버로 뛰어들었다. 비용은 휴대전화 거치를 위한 10만원대 삼각대와 마트에서 산 3만원대 중절모가 전부. 15~20분 분량의 한자·한문 강의를 올리는데 ‘나훈아가 가황이 된 사연’은 조회수 15만회를 넘겼다. 김 교수는 “다음 달 4일부터 사서삼경 전체 강의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면이 주류가 된 코로나19 시대, 대학 교수들의 정년 퇴임 풍속도도 달라졌다. 퇴임 기념식을 생략하거나 언택트로 대신하는 일이 많아진 반면, 예전처럼 제자들을 동원해 논문 모음집인 두꺼운 ‘논총’을 내는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렵게 됐다. 대신 기념 에세이집을 내거나 대중서를 집필하는가 하면, 동영상 강의나 악기 연주 등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도 한다.
컴퓨터공학자인 이윤배 조선대 명예교수는 정년 기념으로 수필 55편을 묶은 에세이집 ‘아파, 그래도 괜찮은 삶이야’를 출간했다. 문자학 전공인 전광진 성균관대 중문학과 명예교수는 고전 번역에 처음 도전해 지난해 여름 정년에 맞춰 ‘우리말 속뜻 논어’와 ‘금강경’을 냈다. 전 교수는 “내가 새로운 길을 걷는 상황에서 제자들한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식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꾸준히 배워 온 하모니카 실력을 발휘해 정년을 앞두고 유튜브에 5중주 등 연주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생명공학자인 김은기 인하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학생과 졸업생 130여 명을 상대로 정년 기념 비대면 대중 강연에 나섰는데 주제는 ‘목표와 시간 관리 노하우’였다.
코로나 사태 속 생계가 어려워진 제자들을 위해 장학금을 쾌척하는 경우도 있다. 홍봉선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정년과 함께 장학금 2000만원을 대학에 기탁했는데 이 돈은 긴급히 생활 자금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정년 풍속도가 바뀐 배경에는 ‘고령화 시대엔 정년을 해도 아직 한창 때여서 활동을 정리하는 행사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란 의견도 있다. 심창구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매체에 “어딜 가도 80~90대 선배 학자들이 많아, 정년이 7년이나 지났는데도 허리 한번 펴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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