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혜와 존 노, 두 성악가의 가방엔 '동요집'이 들어있다
테너 존 노(한국명 노종윤·29)에게 동요는 ‘선생님’이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신학을 전공한 아버지를 따라서 미국 켄터키로 건너갔다. 일곱 살 때 돌아왔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어가 서툴렀다. “존댓말을 잘 몰라서 유치원 선생님께 반말 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후끈거리죠.” 그때 그에게 한국어 교재 역할을 해준 것이 동요였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일처럼 여기고’(동요 ‘서로 서로 도와가며’) 19일 인터뷰에서도 그는 유치원에서 배웠던 동요를 잊지 않고 불렀다.
소프라노 임선혜(45)에게 동요는 ‘가족’이다. 경기도 파주에 온 가족이 모이면 언제나 가족 음악회가 열린다. 조카들이 동요를 부르거나 바이올린이나 플루트로 선율을 연주하면, 임선혜는 피아노 반주를 자청한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 의자에는 오페라 아리아가 아니라 동요집이 들어 있다. ‘나뭇가지에 실처럼 날아든 솜사탕’(동요 ‘솜사탕’) 그에게 동요는 조카들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기억에 남아 있다.
두 가수가 오페라 아리아나 가곡이 아니라 모처럼 동요를 불렀다. 코리안 심포니(지휘 정치용)가 연주한 동요 음반 ‘고향의 봄’에 참여한 것. 임선혜는 ‘고향의 봄’ ‘엄마야 누나야’ ‘반달’ 등 세 곡을, 존 노는 ‘얼굴’과 ‘별’ 등 두 곡을 불렀다. 김택수·나실인·안성민·이용석 등 전문 작곡가들이 편곡을 맡았다. 그래서 원곡의 곡조를 살리면서도 빈의 왈츠, 바그너의 오페라, 디즈니 뮤지컬 같은 다채로운 색깔을 입혔다. 지휘자 정치용씨는 “코로나로 무대가 사라지는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음악이 위로가 될까 고민하게 됐다”면서 “베토벤과 모차르트도 좋지만 근심 없고 꿈 많던 시절에 즐겨 불렀던 동요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동요는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노래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나면 부를 일이 드물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전문 성악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 과제다. 바흐 헨델의 바로크 음악으로 유럽의 명문 오페라극장에 서고 있는 임선혜는 ‘고향의 봄’에 고음악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1절은 원곡의 선율을 부르되, 2절에는 바로크 아리아처럼 즉흥적으로 꾸밈음을 더했다. 임선혜가 공연 앙코르로 즐겨 선사하는 휘파람 솜씨도 곡 중간에 가미했다. 그는 “녹음할 때에도 휘파람만큼은 반복이나 중단 없이 한 번에 끝냈다”며 웃었다. ‘반달’을 부를 때는 후렴의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에서 자장가를 부르듯이 살짝 끊어서 불렀다. 임선혜는 “잠든 아기 깨우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고 말했다.
존 노가 부른 ‘얼굴’은 양희은과 임재범 등 가수들의 애창곡으로 유명하다. 그는 “동요지만 한 편의 드라마가 깃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라는 초반 가사에서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무덤덤하게 불렀다. 절정에서 억눌렀던 감정을 잠시 폭발시켰다가 자연스럽게 잦아드는 방식이다. 그는 “‘얼굴’과 ‘별’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음악 시간에서 배웠던 동요들인데 지금 다시 부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둘은 독일과 미국에서 유학한 정통 클래식 성악가들. 하지만 대중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크로스오버 4중창단 ‘라비던스’의 멤버인 존 노는 최근 독집 음반을 준비 중이다. 월드 뮤직이나 전자 댄스 음악(EDM)은 물론, 힙합도 즐겨 듣고 부르는 ‘끼돌이’다. 그는 “한국과 미국,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에 있는 제 삶 자체가 크로스오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선혜도 다음 달부터 뮤지컬 ‘팬텀’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다. 그는 “클래식이 집이라면, 뮤지컬은 즐거운 소풍”이라며 “앞으로 번스타인의 뮤지컬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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