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솔직한’ 김정은의 核 집착은 왜 못 들은 척하나

임민혁 정치부 차장 2021. 2. 2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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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당대회서 核만 36회 강조… 대화하되 어설픈 환상 버려야
文정부만 “北비핵화 의지 믿자”… ‘또 속아보자’와 같게 들릴 것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는 2018년까지 지상과 공중, 해상과 수중에서 핵 타격 능력을 완전하게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 2014년부터 군 현대화 5개년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김정은을 평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 “솔직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해 통일부 장관, 전 비서실장 등 어림잡아 10여명이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경제 실패도 자인하고, 열악한 북의 교통 상황도 털어놓고, 우리 공무원 사살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런 김정은이 당대회에서 36차례 ‘핵무기’를 강조하는 동안 ‘비핵화’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핵 포기는 없다’고 외친 것 같은데 우리 정부는 왜 ‘김정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정반대 해석을 할까. 김정은이 김여정을 시켜 ‘특등 머저리’라며 문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솔직하게 표출하는데 왜 여기서 ‘과감한 대화 의지’를 읽어내나.

북 김씨 일가가 수십 년에 걸쳐 체제의 명운을 걸고 개발한 핵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건 상식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이 정말 생각을 바꿨는지는 몇 번이라도 검증해야 한다. 우리가 ‘하노이 노딜’ 이후 본 것은 십여 차례의 미사일 실험, 연락사무소 폭파, 막말과 저주다. 이 정도면 ‘시간 벌기 위해 또 사기를 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를 직접 확인했다’며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고 잘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정보도 없고 복잡한 외교 함의를 읽어낼 능력도 없는 보통 사람들의 괜한 걱정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북을 믿지 말라’고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집단이 북한과 직접 마주 앉았던 협상가, 북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무부 2인자에 오른 웬디 셔먼은 과거 클린턴 대통령 방북을 추진했던 대북 포용론자였다. ‘최악의 유화정책을 편 인물’이라는 욕까지 먹었다. 하지만 셔먼은 북이 약속을 잇따라 파기하고 핵 개발을 멈추지 않는 것을 경험한 뒤로는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 정권이 붕괴할 수 있을 만큼 혹독한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6자 회담 주역인 크리스 힐 전 국무부 차관보는 어떤가. 그 역시 ‘김정힐(김정일+힐)’ 조롱까지 들으며 북 입장을 이해하려 했지만 지금은 “무엇을 하든 북이 잔혹한 정권이라는 본질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평창 이후 김정은’은 다르다는 반박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때 국방부 인도·태평양 차관보로 싱가포르 합의에 깊숙이 관여했던 랜들 슈라이버의 말이 참고가 될 것이다. 슈라이버는 본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합의를 존중해 비핵화로 간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 싱가포르 합의 이전의 최대 압박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김씨 금고지기’의 사위로 평양 내부 사정에 정통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북핵은 체제 안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김정은은 비핵화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이 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인가.

지금 바이든 행정부 등에서 강력한 대북 압박을 주장하는 대부분은 ‘매파 전쟁광’이나 ‘네오콘’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북핵을 외교로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북 입장을 배려하며 대화를 이끌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 북이 말하는 ‘비핵화’가 한·미가 원하는 것과 근본부터 다른 개념임을 체감했다. 그렇기 때문에 북과 대화를 계속하되 어설픈 환상 따위는 버리라는 것이다. 상대방 실체를 냉정하게 파악하는 건 협상의 기본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지금 “김정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니 믿자”는 한국 정부의 요구는 “또 한 번 속아보자”는 말과 다르지 않게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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