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백기완 영결식은 봐주더니… 경찰 “방역 위반 자영업자 단속했다” 자랑

최아리 기자 2021. 2. 2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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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허탈해요. 그동안 방역 수칙을 왜 지켰나 싶어요. 바보같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파티룸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지난 1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 장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문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진이었다. 그는 한 달에 월세 300만원을 내지만, 방역 수칙이 강화됐던 지난 한 달간 아예 영업을 못 했다. 형제끼리 모임도 금지된다는 방역 수칙 때문에 시민들은 설날 가족 모임을 포기했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규정 때문에 영업을 할 수 없었던 풋살장 업주, 돌잔치 전문 업체 업주들은 지난달 시위를 열었다.

방역 수칙 위반을 단속해야 할 시청 청사 앞마당에 1000여명이 모였다. 수도권 방역 지침에 따르면 야외라도 99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바로 눈앞에서 수백 명이 왔다 갔다 했지만, 서울시도 경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영결식이 기습적으로 열린 것도 아니었다. 장례위는 전날 영결식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에는 “행사를 열 테니 교통 통제를 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경찰은 단속은커녕 차량을 통제하며 행사를 도왔다.

단속 주체들은 “방법이 없다”며 서로 책임을 미뤘다. 경찰은 “관혼상제는 집시법 대상이 아니다”라며 “단속 주체인 서울시가 ‘모니터링 후 사후 고발 조치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에 따로 동원할 수단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는 “영결식 행사가 진행된 광장은 개방된 장소로 사방에서 진입할 수 있어 통제할 수단이 없었다”고 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방역 수칙 위반 단속은 성과로 삼던 경찰과 지자체가 서로 수단이 없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21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서초구와 강남구 유흥 주점을 불시 점검해 방역 수칙을 위반한 10곳을 적발하고, 53명을 입건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서울시는 22일 영결식 주최자 등을 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법에 따라 사후 조치를 했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다했다는 얘기로 들렸다. 현행 감염병예방법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다음 각 항에 해당하는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한창일 때 서울 한복판에서 1000여명이 모이는 동안 수수방관하다, 뒤늦게 처벌한다면 ‘예방’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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