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66] 카를로 크리벨리 ‘성모자상’의 사과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1. 2. 2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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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크리벨리, 성모자, 1480년경, 목판에 템페라와 금, 36.5x23.5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카를로 크리벨리(Carlo Crivelli·약 1430~1495)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중부의 아스콜리피체노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유화가 확산되던 시절에도 중세식 템페라를 고집했는데, 안료를 달걀노른자 등에 섞어 그리는 템페라는 유화보다 빨리 마르기 때문에 여러 번 덧칠해도 색이 맑고 묘한 광택을 낸다. 그림 속의 장식이나 무늬에 맞게 나무판을 조각하고 그 위에 템페라와 금박으로 치밀하게 세부를 그려낸 크리벨리의 작품은 마치 형형색색 반짝이는 보석을 정교하게 깎아서 박아 넣은 듯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영롱하다.

크리벨리는 특히 성모자상을 여럿 남겼는데, 그림 속 성모 마리아는 모두 날렵한 계란형 얼굴, 티 없이 맑은 피부, 섬세한 이목구비에 무표정한 얼굴을 가진 도자기 인형 같다. 천상의 우아함을 갖춘 성모와 달리 아기 예수는 오동통한 팔다리를 버둥대며 엄마 품에서 제멋대로 뒹구는 실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성모자 뒤에는 분홍빛 휘장과 함께 풍성한 과일과 채소가 주렁주렁 달렸다. 크리벨리의 성모자상에는 대부분 이렇게 오늘날의 최고급 과일 선물 세트처럼 탐스러운 온갖 과일이 초록 잎사귀와 화려한 천과 함께 어우러져 등장한다. 사과는 물론 원죄(原罪)의 상징이지만, 그림마다 별스럽게 큰 과일들로 잔치를 벌인 걸 보면 어쩌면 화가가 처음부터 성모자상을 그리려던 게 아니라 과일을 그리려다 성모자상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뚜렷한 개성으로 인기를 누렸지만 당시 유행하던 르네상스식 화풍이 아니었던 탓에 당대 출판된 전기가 없어 생애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유부녀와의 불륜으로 벌금형에 구금까지 당했던 범죄 기록이 있을 뿐. 역시 사과는 죄악의 상징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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