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풍력 천국 덴마크의 이면

손진석 파리 특파원 2021. 2. 2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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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정부가 건설할 예정인 풍력발전용 인공섬.

덴마크 정부가 특이한 전기 생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풍력발전기를 돌리는 축구장 18개 넓이 인공섬을 2033년까지 띄우겠다고 발표했다. 겉만 보면 혁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면에는 전력 수급에 애를 먹는 고민이 담겨 있다.

덴마크는 원전을 아예 없앤 나라다. 1985년 탈원전을 결의했고, 2006년 연구용 원자로마저 제거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닐스 보어(1885~1962)가 물려준 원자력 강국으로서 기술과 전통을 허물어 버렸다. 원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폭파한 셈이다.

대신 덴마크는 전체 전력의 46%를 풍력으로 만들어낸다. 북해의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자연 조건을 활용한다. 그러나 생산성은 신통치 않다. 전체 전력의 각 40%씩을 원전과 수력으로 만들어내는 이웃 스웨덴과 명암이 분명하게 갈린다. 덴마크의 인구는 스웨덴의 57%인데, 전력 생산량은 스웨덴의 19%에 그친다(2018년). 전깃줄로 연결된 유럽에서는 전기 수출입이 수시로 이뤄지는데, 덴마크는 수입이 수출보다 1.5배 많다. 수입이 막히면 전력 공급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스웨덴의 전기 수출이 수입보다 2.4배 많은 것과 대조적이다.

에너지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는 결국 돈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덴마크 전기요금은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비싸다. 스웨덴보다는 55%나 비쌀 정도다. 풍력발전 업계 보조금과 전기 수입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한다. 풍력발전용 인공섬 건설 비용은 280억유로(약 37조원)에 달한다. 인공섬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국토가 비좁은 가운데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땅이 점점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원전을 버렸다고 해서 덴마크가 친환경을 달성했다고 큰소리칠 입장도 못 된다. 풍력발전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화력발전소를 꽤 가동하고 있다. 전력원 중 석탄 비율이 22%에 이른다. 스웨덴의 석탄 비율이 1%인 것과 현격한 차이다. 덴마크가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아예 안 쓰는 것도 아니다. 원전을 가동 중인 스웨덴·독일의 전기를 수입하기 때문이다.

유럽이 원전 비율을 낮추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 흐름을 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전환을 필요 이상 재촉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기 생산 효율이 낮아지고, 구멍을 메우려고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탓에 오히려 환경을 해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스웨덴이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원전에 40%를 의지하는 건 이런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어코 탈원전을 하겠다면 덴마크처럼 민주적 절차라도 지켰으면 한다. 덴마크는 1973년 탈원전 논의를 시작해 12년에 이르는 사회적 토론을 거쳤다. 덴마크에서는 공무원이 일요일 밤 탈원전 자료를 몰래 삭제했다가 쇠고랑을 차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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