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35] '제우스 화신' 숭배받던 소.. 이젠 10억마리, 메탄 뿜는 가축 전락

주경철 교수 2021. 2. 2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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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소, 풍요의 소, 재앙의 소

인류 역사 초기부터 소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기원전 7000년 경부터 번성했던 신석기 시대의 중요한 유적지 차탈휘익(Çatalhöyük)에서는 소를 숭배한 흔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거대한 황소 신을 나타낸 벽화라든지(그림), 건물 내부 깊숙한 곳에 모셔둔 소뿔 같은 것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연구자들은 이 황소 신이 후일 지중해 여러 지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예컨대 고대 이집트의 아피스(Apis)나 그리스의 제우스 같은 황소 형상의 신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신들은 강력한 힘으로 적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최고 권좌의 신으로 모셔졌다. 여러 종교 의례에서 소고기를 먹는 것은 이 귀한 동물에 깃든 신성성을 나누어 가지는 상징이었다. 따라서 소수의 귀족 전사들만 벌건 육즙이 도는 소고기를 먹으면서 지배권을 과시할 수 있었다. 반대로 힌두 문화에서는 소가 너무 신성한 존재이므로 오히려 인간들이 함부로 먹지 못한다는 금기가 생겼다. 만일 실수로 신성한 암소를 죽이면 자신이 죽인 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외양간에 한 달 동안 갇혀서 암소들 뒤를 쫓아다니며 발굽에서 이는 먼지를 삼키는 처벌을 받는다.

해변에서 놀던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에게 제우스는 한눈에 반해 버린다. 아름다운 소의 모습으로 변신한 신(神)은 공주를 등에 태우고 바다를 헤엄쳐 건너 자신이 태어난 섬 크레타에 다다르고, 그 섬에서 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공주와의 사이에서 크레타의 왕 미노스를 낳았다. 소는 신석기 시대 때부터 최고 권위의 상징이었고, 이집트의 아피스나 그리스의 제우스 등이 황소 형상을 가졌다.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드 트로이의 1716년작 유화‘에우로페의 납치’,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소장. /위키피디아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사회에서 소고기는 신령한 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귀한 음식이었다. 대귀족이나 부유한 상층 부르주아들만 연중 신선한 고기를 먹었지, 도시의 서민들이나 시골의 농민들로서는 고기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비교적 풍요롭게 고기 맛을 보는 때는 겨울나기 준비를 하는 늦가을 잠깐 동안이다. 목초가 부족하기 때문에 종자 보존용으로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 가축들을 잡는 이 시기에 그나마 살코기와 내장 등을 먹고 남은 고기는 보존용 염장 음식을 만들었다.

일반 서민들까지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게 된 건 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지에서 육류를 수입한 이후의 일이다. 콜럼버스 이후 신대륙에 소⋅돼지⋅말⋅양 등 구대륙 가축들이 들어와 엄청나게 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온 소는 스페인산 롱혼(Longhorn) 종이었는데, 이 소는 워낙 강인하고 튼튼해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 새로운 땅의 목초도 잘 맞고 무엇보다 소들을 잡아먹을 만한 대형 육식동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메리카의 초지에서 소 떼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거의 야생으로 돌아간 영리한 소들은 60㎞ 떨어진 물 웅덩이를 감지할 수 있었고, 송아지들은 웬만한 높이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1700년경 남미의 팜파스 지역에는 이런 소들이 5000만 마리가 넘었다. 카우보이·가우초·바케이루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아메리카의 목동들은 말을 타고 엄청난 소 떼를 몰았다. 문제는 아무리 소가 많고 고기가 넘쳐도 대서양을 넘어 유럽에 판매할 방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말에 가서야 냉동선과 냉장차, 기차 덕분에 아메리카의 싼 육류가 유럽으로 대량 들어올 수 있었다. 드디어 대다수 사람들이 맘껏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신석기인들이 ‘오로크스(멸종된 소과의 거대 포유류)’를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 소는 사냥 대상이자 동시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일종의 신으로 숭배받고 있다. 터키 남동부 아나톨리아 차탈휘익 신석기 주거 유적지에서 발견됐다. /위키피디아

그렇지만 사람들은 조만간 싼값에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고기 사이사이에 살짝 기름기가 낀 품질 좋은 고기를 원했다. 그런 고기를 얻으려면 일단 소들을 목장에 풀어놓아 목초로 사육하다가 적당한 때에 곡물을 먹여서 지방질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남아도는 옥수수를 소에게 먹이는 방식으로 그와 같은 고품질 소고기를 생산했다.

오늘날 세계의 육류 소비량은 실로 엄청나게 늘어나는 중이다. 사람들은 부유해질수록 더 많은 고기와 유제품을 먹는다. 그렇지만 고기를 얻으려면 더 많은 식량을 가축에게 먹여야 한다. 1칼로리의 소고기를 얻으려면 6칼로리의 사료를 주어야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10억 마리의 소를 키운다.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고품질 소고기와 유제품을 먹기 위해 소에게 사료를 먹이느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식량 사정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소를 비롯한 가축들의 대량 사육은 지구 환경 악화라는 새로운 문제도 일으키고 있다. 동물들이 메탄과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메탄 분자는 한 세기 동안 이산화탄소보다 28배, 아산화질소는 무려 265배 더 심한 온난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매년 동물 사육에서 배출되는 메탄과 아산화질소는 70t의 이산화탄소에 해당한다.

고대 아테네에 세워졌던 것으로 전해지는 미노타우로스 석상의 로마 시대 복제품. 신화에 따르면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미궁 라비린토스를 짓고 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뒀다. 희생 제물로 소년소녀들을 바치던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미궁으로 침투해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신화 속 이야기는 크레타의 해양 제국에 대한 아테네 중심 도시 국가들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소장. /Marsyas/위키피디아

소가 메탄을 많이 배출하는 이유는 독특한 소화기관 때문이다. 인간은 위가 하나지만 소는 배 속에 위를 4개(반추위·그물위·천엽·막창)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소화기관을 가진 덕분에 사람은 먹지 못하는 풀을 소화해서 살아갈 수 있다. 소가 뜯어먹은 풀은 일단 반추위에 저장했다가 다시 입으로 가져와 씹으면서 소화효소와 섞은 뒤 세 번째와 네 번째 위로 넘긴다. 이때 위 속의 박테리아가 장내 발효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음식을 분해하고 발효시키는데, 여기에서 메탄이 발생한다. 이 메탄가스는 트림이나 방귀의 형태로 체외 배출한다. 10억 마리의 소들이 내뿜는 트림과 방귀 속 메탄은 지구 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방귀세’를 만들려고 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여기에다가 소들이 내놓는 똥 또한 문제다. 똥은 분해되면서 아산화질소와 메탄, 유황, 암모니아를 배출한다. 한때 신의 대리 형상으로 여겼던 신성한 소는 어느 새 똥·트림·방귀로 지구 환경을 악화시키는 불결한 존재로 내몰리게 되었다.

많아도 너무 많은 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극단적인 방안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가축 사육을 중단하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사람들이 안심·등심·갈비 같은 걸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대안은 대체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최신 저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빌 게이츠는 집안 전통이라는 치즈 버거를 포기하고 대신 식물성 고기를 먹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안은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드는 것이다. ‘배양육(cultured meat)’ ‘세포 기반 고기(cell-based meat)’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 고기는 줄기세포를 배양한 뒤 근육 조직으로 분화하도록 유도하는데, 이 근육 조직들이 뭉쳐서 우리가 먹는 단백질 조직이 된다. 다만 이 방식은 값이 너무 높아서 현실성이 없다. 기술이 더 발전하여 단가가 충분히 내려가면 시장에 나올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 해도 미국의 소 목축업자 단체들의 강력한 로비에 막힐 가능성이 있다. 현재에도 이런 인공 고기를 마트에서 ‘고기’로 분류하는 것을 막는 곳이 17주에 달한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필름 ‘워낭소리’에서 보듯 40년 세월 주인과 소가 고락을 같이하다가 죽은 다음에도 서로 가까운 곳에 묻히는 아름다운 인간-동물 관계는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다. 지구의 안전을 위해 인간과 동물 간 건강한 균형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영국의 쇠고기]

2005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정치 문제로 영국과 갈등을 겪을 때 “요리를 못하는 나라 사람들을 신뢰할 수는 없다”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발끈한 영국 신문은 다음 날 아침 1면에 영국의 ‘맛집 레스토랑(celebrity chefs)’ 목록을 실었다. 그런데 그 목록을 보면 프렌치·이탈리안 레스토랑이 하나 가득이다. 사실 영국은 오랫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요리 후진국’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과도한 쾌락 추구를 자제하는 청교도적 분위기 때문이다. 너무 맛있는 음식을 탐하면 천박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 결과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영국인들은 실로 ‘참담한 물건’을 먹었다. 그렇지만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음식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소고기를 많이 먹는 데다가 ‘인위적이지 않고 정직한’ 요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1713년 영국의 문인 헨리 필딩은 세태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영국인들은 훌륭한 소고기 구이를 먹기 때문에 영혼이 고양되고 피가 풍요롭다. 군인들은 용맹하고 궁정인들은 사려 깊다... 그런데 경솔한 프랑스인들에게서 요리와 춤을 배운 다음 모두 헛된 자만심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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