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보내기, 아이가 관심 보일 때가 적기[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2021. 2.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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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유아기 학원 보낼 때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유아기 학원은 부모가 알아서 고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릴수록 아이의 의사나 특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부모가 단독으로 판단해서 보낼 경우 아이의 단점이 더 강화될 수도 있다.

아이가 겁이 많고 불안해하는 성향이 있으면, 단점을 극복시키기 위해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태권도는 재미있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태권도 학원에 다니다가 겁이 더 많아지고 더 예민해지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은 소리 자극에 예민하거나 빠른 움직임을 굉장히 무서워하기도 한다. “이얍∼” 하고 기합을 넣는 소리를 듣자마자 겁에 질린다. 용감해지기는커녕 태권도 갈 때마다 악을 쓰고 울게 된다. 이럴 때는 억지로 보내는 것보다 아이에게 맞는 다른 운동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과 부딪치는 것, 뭔가 자기에게 날아오는 것을 두려워해서 축구나 농구를 싫어하기도 한다. 이때는 일대일로 가르치는 운동을 생각해 본다. ‘수영’은 괜찮은 편이나 물을 무서워한다면 물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난 후 가르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산만하면 차분해지게 하려고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데 산만한 아이들은 피아노 배우는 것을 힘들어할 수도 있다. 피아노는 생각보다 여러 단계를 거쳐서 배우게 된다. 우선 음계가 상징화되어 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이해하려면 건반마다 이름이 붙은 상징을 이해해야 하고 피아노를 칠 때는 눈으로는 악보를 보면서, 몸으로는 건반의 공간적인 위치를 익혀서 건반을 보지 않고 쳐야 한다. 산만한 아이에게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피아노는 같은 부분을 여러 번 쳐야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같은 곳을 여러 번 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더 늘지 않는다.

미술은 공간지각 능력이나 소근육 발달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힘들어한다. 이 아이들은 연필이나 색연필을 잡는 것부터 어색해 그림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말도 잘하고 머리도 좋은데 유난히 그림만 못 그리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글쓰기도 싫어하고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괴로워한다. 하지만 부모는 그런 이유로 미술학원에 보낸다. 아이가 크레파스, 색연필 등을 잡고 쓰다 보면 그림 그리기도 좀 배우고, 연필도 잘 잡고 잘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학원 때문에 연필 잡는 것을 더 징글징글하게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미술이 문제가 아니라 연필도 안 잡으려 해서 공부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지면 안에 대상을 배치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 균형이 안 맞는다. 구석에 작게 하나 그려놓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간혹 이런 그림은 자신감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만 어릴수록 공간지각 능력이 덜 발달하여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 중에는 만들기는 좋아하는데 그리기는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아이들은 소근육 문제가 아니라 색칠을 꼼꼼하게 하는 것을 지겨워해서 싫어하기도 한다.

태권도든 피아노든 미술이든 아이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잠깐 가르쳐 봐도 된다. 하지만 별문제가 없는 아이가 엄청나게 저항한다면 굳이 아직은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조금 늦더라도 아이가 관심을 보일 때 시작하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낫다.

사실 예체능 학원이라도 너무 일찍 보내지는 않았으면 한다. 지나치게 일찍 경쟁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교사가 조심한다고 하지만 그림을 예쁘게 그린 아이를 보면 “아,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너무 예쁘다”라고 칭찬하게 되고, 잘 못 그린 아이를 보고는 “○○아, 여기는 좀 삐뚤빼뚤하네. 다시 좀 해볼래?”라고 말하게 된다. 아무리 어려도 그 느낌이 뭔 줄 다 안다. 그래서 학원을 너무 일찍 보내면, 자신감에 더 빨리 상처를 받게 될 수 있다.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효능성과 자기 신뢰감이다. 나중에 학교에 가서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일찍 학원에 보내는 것이라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너무 잘 가르치려고 하다가 아이 공부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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