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교육공약 고교학점제, '하는 척'만 할 텐가[동아 시론/김경범]
모순 풀어낼 해결책 다음 정부 떠넘겨
현장과 괴리된 정책은 체념만 남긴다
그런데 대통령의 ‘1호 교육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고교학점제 종합추진계획’이 16일 느닷없이 발표되었다. 임기 만료를 1년 남짓 앞둔 시점이다.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고교학점제 도입을 가로막는 정시 확대를 결정하여 스스로 모순을 만들었는데, 이번 발표에서는 ‘1호 교육공약’ 실행에 필수적인 수능 체제와 대입 제도 개편을 다음 정부로 넘겨 버렸다. 현 정부가 만든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장애물을 스스로 제거하지 않은 것이다. ‘고교학점제 종합추진계획’이 정부의 면피성 발표로 읽히고 거창한 계획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다. 더구나 18일 서울행정법원의 서울시 2개 자사고 지정취소 결정 1심 판결을 이틀 앞두고 어차피 발표할 문건을 서둘러 ‘밀어내기’식으로 발표했다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교육부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으니 이제 공은 차기 정부로 넘긴다는 얘기로도 들리는데, 과연 이 말을 누구에게 하려는 것일까. 물론 국민은 아니다.
이번 발표의 본질적인 문제는 현 정부 임기 동안 발생한 고교학점제와 대입 정책의 충돌이라는 모순적 상황을 풀어낼 해결책 부재와 정부주도형 정책 설계의 불완전성에 있다. 정책 설계의 불완전성이란 정책이 포괄하는 영역은 커다란데도 정부의 역할은 소극적으로 설정했고, 교사를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고교학점제는 학교 현장의 교사에게 더 많은 책임과 짐을 지운다. 그렇기에 교사가 새로운 짐을 감당하도록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만드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교사의 행정업무를 대신할 인력을 투입하거나, 교사의 행정업무를 대폭 줄이는 학교자율권 확대 및 교육자치 방안을 내놓거나, 소수의 교사가 학교행정을 담당하는 학교문화 개선 방안을 내놓거나, 학교-학생-학부모 사이에 권한과 책임을 재조정하는 사회적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어야 했다.
정책성과는 결국 교사가 만든다. 교사의 마음을 얻고 의지를 끌어내지 못하면 정부 정책은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교사가 위에서 시키는 일이니 마음에 없이 그저 하는 척하게 되면 성과가 나올 리 없다. 현 정부는 고교학점제 시범학교를 운영하였고, 지난해 마이스터고에 고교학점제를 적용했다. 내년에는 특성화고에도 고교학점제가 전면 적용되고 일반고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된다. 고교학점제 실현을 위한 2022년 개정 교육과정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고교학점제를 다음 정부에서 사라질, ‘바람 앞에 놓인 풍선’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정책은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만들어지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다. 물론 지원금을 주면 정부가 원하는 문서는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장과 일체화되지 않은 정책은 정부에 대한 교사의 신뢰,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를 잃게 만들고 학교 현장에 체념만 남긴다.
이제 그나마 현 정부가 고교학점제를 잘 마무리하는 방법은 남은 임기 동안 고교학점제 실행을 도와주는 수능 체제와 대입 제도를 연구하여 다음 정부에 제안하고, 2025년부터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시행령 개정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라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음을 감안해 고교 체제 개편을 법률에 규정하거나 수직적 고교 체제를 해소할 새로운 방안을 찾는 것이다. 또 초중고교 수업에서 가르치는 지식을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도록 온라인 수업 아카이브를 만들고, 교육청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결합하는 새로운 수업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제 학점제의 미래는 현 정부의 마무리와 다음 정부 결정에 달려 있다. 정말로 실행하거나 아니면 하는 척하거나. 현 정부는 결과적으로 후자를 택했다. 다음 정부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정말로 실행하거나 하는 척하거나, 아니면 이름을 바꿔서 더 큰 교육개혁을 실행하거나.
김경범 서울대 인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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