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맞은 삼청동, 새 전시로 문 열다

손택균 기자 2021. 2.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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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난주 일단 완화됐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길의 대형 갤러리들은 때마침 새로운 전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같은 기간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의 개인전 'More Life'는 평온한 명상보다는 강렬한 자극의 탐미적 이미지를 경험하기 원하는 관람객에게 어울리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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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Timeless'
메이플소프의 'More Life'
윤석남의 '싸우는 여자들..'
수채 안료로 물들인 한지를 잘라내 가장자리를 불에 지진 후 하나씩 겹쳐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한 김민정 작가의 ‘Timeless’를 관람객이 살펴보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난주 일단 완화됐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길의 대형 갤러리들은 때마침 새로운 전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북적이는 쇼핑몰이나 번화가에 비해 한결 안심하고 봄맞이 나들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전시와 맛집 정보를 살펴보고 찾아가면 반나절쯤은 훌쩍 편안하게 지나간다.

현대갤러리에서 3월 28일까지 개인전 ‘Timeless’를 여는 김민정 작가(59)는 불과 손의 흔적을 쌓아 이미지를 구축한다. 한지를 재단해 향불이나 촛불에 갖다 대고 곧바로 손으로 눌러 가장자리만 그을린 후 차곡차곡 이어 붙인다. 길게는 두 달 동안 엮어낸 도톰한 질감을 가까이 다가서서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길고 가늘게 자른 한지 조각의 연쇄가 파도 아래 고요한 심해를 이루고, 앵무조개 소용돌이를 닮은 첩첩 나이테를 이룬다. 동그랗게 잘라낸 한지 조각들이 모여 눈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본 음영을 재현하고, 뭉툭한 타원으로 이어 붙인 조각들은 비 오는 날 높은 창가에서 내려다본 우산의 행렬을 재현한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1992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김 작가는 2000년 이후 한지에 불을 대기 시작했다. 17일 전시실에서 만난 그는 “태우고 난 흔적에서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종이의 성격이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에서 매력을 느꼈다. 작업 과정에서 종이 스스로 언제나 많은 일을 해준다. 우연의 연속이 맞물려 이루는 조화를 확인하는, 명상과 같은 과정”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한때의 연인이자 평생의 친구였던 록 뮤지션 패티 스미스를 촬영한 1978년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같은 기간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의 개인전 ‘More Life’는 평온한 명상보다는 강렬한 자극의 탐미적 이미지를 경험하기 원하는 관람객에게 어울리는 전시다. 록 음악 팬이라면 한 번쯤 접해 봤을 패티 스미스의 1975년 데뷔 앨범 ‘Horses’ 재킷 사진을 촬영한 이가 메이플소프다. 스미스를 촬영한 다른 사진, 배우 리처드 기어와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의 사진도 만날 수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한 메이플소프는 동성애와 죽음을 연상시키는 작품들로 명성만큼의 논란을 얻었다. 활을 내려뜨리고 지쳐 잠든 모습의 에로스 석상을 촬영한 ‘Sleeping Cupid’처럼 모든 이미지 너머로 외로움과 고단함이 배어 나온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연출한 조명 아래로 충격적인 이미지가 이어진다. 성적 메시지를 담은 사진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람객이라면 피하는 편이 좋다.

윤석남 작가의 ‘김옥련 초상’. 학고재 제공

4월 3일까지 학고재에서 열리는 윤석남 작가(82)의 개인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는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화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다. 단재 신채호의 아내인 박자혜, 비행사 권기옥, 계몽운동가 김마리아, 해녀운동가 김옥련 등의 모습을 한지 위에 채색화로 표현했다. 안쪽 전시실에는 붉은색 종이 콜라주와 거울을 벽면에 둘러치고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드로잉을 장승처럼 세워 놓은 설치작품 ‘붉은 방’을 마련했다.

박자혜의 손에 들린 골분함을 감싼 붉은 보자기, 권기옥의 등 뒤로 보이는 프로펠러 쌍엽 전투기, 교실 칠판 앞에 선 김마리아의 모습, 김옥련의 배경을 채운 노란색 꽃의 바다는 모두 상상으로 빚은 것이다. 윤 작가는 “각 인물에 대한 당시 신문기사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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