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쿠팡의 위험요소
[경향신문]
쿠팡이 뉴욕증시 상장에 도전한다. 경제지는 쿠팡을 미국에 뺏겼다며 한탄했다. 노동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규제 등이 용의자로 떠올랐다. 사실 쿠팡의 국적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아이러니다. 쿠팡의 모회사는 쿠팡 LLC로 미국법인이다. 처음부터 미국 상장이 목표였다. 쿠팡의 주요 투자자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조성한 비전펀드다. 비전펀드의 최대주주는 중동의 오일머니다. 우리가 뺏긴 건 대한민국 회사 쿠팡이 아니라 쿠팡에서 일한 노동자다.
쿠팡은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청서에 한국 고용노동부가 쿠팡플렉스와 쿠팡이츠 배달노동자들을 독립계약자로 판정했다고 썼다. 확신은 없었던지 불안한 마음을 덧붙인다. 노동자 지위 논란이 쿠팡의 재무상태, 운영 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를 방어하고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도 쿠팡의 사업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쿠팡은 이를 ‘위험요소’로 명시했다.
쿠팡의 주장은 거짓이다. 2020년 7월30일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은 노동부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노동부는 조합원들이 노동자가 맞는지 조사하겠다며 출석을 요구했는데, 항의 차원에서 각각의 배달회사를 대표하는 조합원들이 단체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이 중에는 쿠팡이츠 라이더도 있었다. 11월10일 노동부는 라이더유니온에 노조설립필증을 교부했다. 대한민국이 쿠팡이츠 노동자에 대해 공식적 판단을 내린 게 있다면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법상 근로자라는 사실 하나다.
쿠팡의 신청서는 플랫폼노동을 기반으로 한 산업의 불안을 그대로 보여준다. 플랫폼기업들은 기존 기업들이 당연히 책임졌던 생산도구 제공, 최저임금 보장, 사회보험 가입, 산업안전 의무에서 해방된다. 이 혁명은 쿠팡 배달을 하지만 근로자는 아니라는 위탁계약서 한 장으로 완수된다. 계약서엔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일하는 사람이 알아서 구해오고 사고가 나도 회사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당연히 배달을 노동자의 완전한 자율에 맡겨두면 서비스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평점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바뀌는 배달료로 노동자들을 통제한다. 여기서 구멍이 생긴다.
마침 쿠팡이 막아야 할 구멍이 두 가지 생겼다. 영국에서 우버 드라이버가 근로자라는 판결이 나왔다. 영국 대법원은 ‘우버’가 요금과 계약조건을 결정하는 점, 운전자가 승차 거부를 자주 하면 불이익을 받는 점, 별점을 통해 운전자 서비스를 모니터링하고 반복된 경고에도 서비스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계약관계를 종료할 수 있는 점을 들어 우버 드라이버를 노동자라고 판단했다. 쿠팡이츠 시스템과 똑같다. 두 번째로 라이더유니온이 쿠팡이츠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쿠팡이 왜 미국으로 갔나를 물을 게 아니라, 쿠팡은 왜 한국 국민들을 플랫폼노동자로 만들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때다. 쿠팡이츠에 등록된 노동자의 숫자가 20만을 넘었다. 쿠팡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위험한 배달 일을 시키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쿠팡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위험요소 아닐까.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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